역도 소녀들의 눈물겨운 성장기를 다룬 영화 ‘킹콩을 들다’.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는 바벨 무게 증가를 요청하는 주인공 박영자의 손을 화면 가득 느린 속도로 보여준다. 박영자는 허리 부상에 괴로워하면서도 금메달을 위해 모험을 한다. 그의 모험을 가능하게 한 것은 스승 이지봉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금메달에 대한 열정이었다.
부상 투혼은 스포츠 영화나 만화의 단골 소재다. ‘공포의 외인구단’의 투수 오혜성은 팔꿈치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에도 마동탁과 정면 승부를 벌인다. ‘슬램덩크’의 북산고 주장 채치수는 발목 부상에도 코트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는 그 장면을 이렇게 표현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는 가상 이야기만이 아니다. 실제 스포츠에서도 이성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장면들이 종종 연출된다. 2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 역도의 이배영은 걷기도 힘든 상황에서 출전을 강행한다. 결과는 실패. 역기를 잡은 손을 끝내 놓지 못하던 그의 모습은 많은 감동을 줬다. 그는 경기 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우선 금메달 때문이다. 금메달만 대접받는 사회에 대한 비판은 너무 쉽다. 선수들이 금메달에 집착하는 이유를 금메달이 가져다주는 금전적 보상이나 사회적 대우 차원에서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58kg에 나선 김인섭은 올림픽을 제외한 주요 국제 대회를 휩쓴 최강이었다. 하지만 그는 예선에서 갈비뼈 부상을 입었다. 당시 국내 대부분의 언론은 ‘김인섭이 고통을 참으며 결승까지 올랐지만 결국 은메달에 그쳤다’고 표현했다. 그는 인터뷰 중 “진짜 모든 걸 다 바쳤거든요…”라며 울었다. 그에게 ‘출전 자체로도 영광인 올림픽에서 은메달까지 따놓고서 왜 우느냐’고 비난할 수 있을까.
광저우 아시아경기 개막이 8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어떤 감동 드라마가 펼쳐질지 설렌다. 드라마 중에는 부상 투혼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마음의 응원과 박수칠 준비만 하면 된다. 부상 투혼이 성공이든 실패든, 금메달에 대한 열정이 결실을 보든 못 보든.
만약 불의의 부상 앞에 출전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그들은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 스승 이지봉의 말처럼 동메달을 땄다고 그 사람 인생까지 동메달이 되는 건 아니니까.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결국 그 사람 인생 자체가 금메달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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