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경유착 수사 與든 野든 방해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6일 03시 00분


검찰이 임병석 C&그룹 회장을 1000억 원가량의 부정 대출 등 혐의로 구속하고 본격 수사에 나서면서 정·관계 및 금융권과 관련한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수사의 초점은 C&그룹이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사세(社勢) 확장과 기업 구명 로비에 사용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구 여권 인사 관련 의혹도 거론되는 만큼 수사의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주목된다.

1990년 임 회장이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설립한 해운중개업체가 모태인 C&그룹은 2000년대 초부터 주로 법정관리 기업들을 인수합병해 한때 계열사가 41개나 될 정도로 급성장했다. 검찰은 C&그룹이 금융권을 비롯한 정·관계에서 영입한 임원들의 역할과 과거 여권 및 권력 주변 인사들의 관련 여부를 캐고 있다.

이 수사에 대해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어제 “기업 사정(司正)이 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과 야당탄압에 이용되면 국민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결국 야당 탄압을 위한 또 하나의 사정”이라고 거들었다. 민주당이 검찰 수사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C&그룹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급성장해 민주당 인사들이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경유착 비리가 드러나면 여(與)든 야(野)든 가리지 않고 수사하는 것이 검찰의 책무다.

C&그룹처럼 단기간에 급성장한 기업 주변에는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관련된 부패의 냄새가 진동하기 마련이다.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이 관련된 비리는 제대로 손대지 못하다가 정권이 바뀐 뒤 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이 따라다녔다.

검찰은 국무총리실 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제대로 수사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검찰은 이 사건에서 ‘BH(청와대) 하명’이라고 적힌 문건이 나왔는데도 청와대 관련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검찰의 본격 수사 착수 시점에 해외로 나가버린 것도 석연치 않다. 검찰은 현 정권 초기에 이루어진 태광그룹 계열사 티브로드의 큐릭스 인수 관련 비리도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다. 태산이 움직일 것처럼 소리만 크게 내놓고 생쥐만 잡는 수사가 돼서는 안 된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이 관련돼 있을 수 있는 사건들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서 과거 여당이자 현재 야당에 소속된 정치인 비리만 집중 수사하면 야당탄압이란 빌미를 주게 된다. 정치권은 검찰의 정경유착 비리 수사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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