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치영]생업도 내던지고… ‘칠레의 기적’ 함께 만든 봉사산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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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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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33명의 광원을 살려내겠다는 칠레 전 국민의 염원은 뜨거웠다.

12일 미국 뉴욕에서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다시 12시간 고속버스를 타고 산호세 광산에 도착하기까지 칠레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았다.

산티아고 공항에서 입국할 때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던 출입국관리소 직원은 광산으로 취재를 온 한국 기자라는 사실을 알고 스탬프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인 ‘광원을 무사히 구하자(Save the miners)’라는 메모를 보여줬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TV로 생중계되는 광산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산호세 광산에서 만난 사람들의 열의는 더 뜨거웠다. 북부 이키케라는 도시에서 14시간 버스를 타고 산호세 광산으로 달려와 어릿광대 복장으로 하루 종일 아이들과 놀아주던 로난도 곤살레스 씨(42), 광원 가족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어주며 이들의 심리적 안정을 지켜주던 자원봉사자 루트 산티바네 씨(43), 두 달째 휴직을 하고 음식봉사를 하고 있던 광산 인근 칼데라 시 직원 로사 발렌수엘라 씨(45). 이들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광원들의 안전한 구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구조작업이 시작되자 칠레 국민 모두는 생중계된 22시간 동안 구조현장을 숨죽여 지켜보며 함께 울고 웃었다. 33명의 광원 가운데 첫 번째로 구조된 플로렌시오 아발로스 씨(31)의 아내와 7세 아들이 남편과 아빠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울었고, ‘불사조’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기쁨에 겨워 풀쩍풀쩍 뛰어다니던 광원 마리오 세풀베다 에스피나 씨(40)를 보며 폭소와 함께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구조작업 내내 현장을 지키며 구조를 총지휘한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 등 칠레 정부 당국도 거의 완벽한 구조작업으로 구조시간을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구조가 끝난 뒤 피녜라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칠레 국민은 한결같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역경에 맞서 싸워 이겼다. 칠레는 과거보다 더 단결되고 강력한 나라로 거듭났다”고 선언했을 때 전 세계도 고개를 끄덕였다.

칠레는 이번 일을 통해 나라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단합된 국민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의 목표로 똘똘 뭉친 국민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분열된 국론으로 국력을 소진해온 한국이 이번 칠레의 광원 구조 드라마에서 얻어야 할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신치영 뉴욕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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