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남국]은행업과 신뢰

동아일보 입력 2010-09-27 03:00수정 2010-09-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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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1909∼2005)는 기업인들이 ‘우리의 고객은 무엇을 구입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가 자동차 브랜드인 캐딜락을 구입하는 고객은 외형적으로 ‘운송 수단’을 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높은 품격’을 샀다고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운송 수단으로 보는 관점은 공급자 중심의 사고다. 반면 품격을 강조하는 것은 수요자, 즉 고객의 입장에서 사고했을 때 가능하다.

고객 관점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는 ‘업(業)의 재정의’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철도 회사가 자신들의 사업을 공급자 관점에서 ‘철도 사업’이라고 정의했다면, 비행기나 육상 교통수단 등의 발달로 철도 이용객이 줄어들 때 성장의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철도 회사가 고객의 입장에 서서 ‘목적지까지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시켜주는 서비스’라고 정의하면 신기술 등장이 오히려 기회가 된다.

실제 제록스는 자신들의 사업을 ‘복사기 판매’가 아니라 ‘문서 관리’라고 재정의하고 문서 출력과 관리 등에 필요한 기기와 서비스를 제공해 복사기 수요 정체에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또 미국 레블론도 스스로를 화장품 판매사가 아니라 고객에게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파는 회사’로 규정하고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객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은행은 무엇을 파는 것일까. 공급자 입장에서는 예금이나 대출 서비스를 해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 재정의하면 전혀 다른 통찰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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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대상은 부모님 정도다. 형제자매에게도 돈을 맡기기가 쉽지 않다. 이로 인한 고객들의 불편을 해결해준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은행이다. 고객들은 은행 직원이나 경영자들이 개인의 이익보다는 고객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형제에게도 맡기지 못하는 돈을 기꺼이 은행에 위탁한다. 고객 관점에서 은행업이 주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뢰다.

최근 신한은행 내분 사태는 고객이 은행으로부터 기대하는 핵심 가치인 신뢰를 훼손했다. 신한은행 고위 경영진의 법률 위반 여부는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이번 내분의 원인이 주주나 고객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한 경영진에 있다는 비판을 면하긴 어렵다. 신한은행은 이번 사태로 인한 조직 분열과 브랜드 가치 훼손 등을 수습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런 비용은 주주와 고객의 손실로 이어질 것이다.

경영진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는 조직에선 사내 정치가 횡행한다. 많은 경영학자가 다양한 실증 연구를 통해 ‘조직 내 정치(organizational politics)’가 만연한 곳에서 직원의 만족도가 떨어지고 이직률이 높아지며 기업성과도 나빠진다는 것을 입증했다. 고객과 시장을 돌보기보다 사내 정치에 매달리는 조직 문화에서 제대로 된 제품과 서비스가 나올 리 없다.

신한은행 고위 경영진은 은행업의 본질적 가치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 신한은행 경영진은 주주와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법적, 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21세기 경영환경에 걸맞은 건전한 조직문화를 갖춰나가야 한다.

김남국 미래전략연구소 경영지식팀장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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