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리 소녀들을 보셨습니까

동아일보 입력 2010-09-27 03:00수정 2010-09-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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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녀들이 월드컵 축구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중미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17세 이하(U-17) 여자 월드컵 결승에서 우리 선수들은 여자축구의 강호 일본을 연장전에 이은 승부차기로 꺾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한 대회에서 사상 첫 우승이라는 자랑스러운 기록이 수립되는 순간 우리는 또 한번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보았다.

한국은 전반 6분 이정은이 선제골을 넣었지만 경기 내용은 일본에 밀리는 형세였다. 후반 2-3으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투입된 이소담은 미드필드에서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슛으로 연장전을 이끌어냈다. 일요일 아침 피 말리는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하는 장면을 지켜본 국민은 콧날이 시큰해졌다. 발군의 스트라이커 여민지는 득점왕과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쥐며 ‘스타 탄생’을 기록했다.

한국 여자축구의 빈약한 저변을 감안하면 세계 제패는 기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급조된 여자축구팀은 데뷔전에서 일본에 1-13으로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어제의 대일전(對日戰) 승리는 20년 만의 설욕이었다. 이제 다른 분야에서도 일본은 넘을 수 없는 벽이 아니다.

국내의 여자축구팀은 고교 16개팀을 포함해 모두 65개에 불과하다. 체계적인 조기교육, 자율과 공감의 리더십, 축구를 즐길 줄 아는 신세대 소녀들의 등장이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U-17 여자 월드컵 출전 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유소년 팀에서 축구 기본기와 전략전술을 배웠다. 조기교육을 통해 한국 축구의 고질적 병폐인 ‘골 결정력 부족’을 극복했다. 예민한 사춘기 소녀들을 푸근하고 감성적 리더십으로 이끈 최덕주 감독의 공로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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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남자나 하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던 시절 아홉 살 안팎의 소녀들은 2002 월드컵을 보고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다. 소녀들은 박지성 선수가 세계적 스타로 성장하는 모습을 선망의 눈으로 지켜보며 꿈을 가꾸고 땀을 흘렸다. 이들은 선진국 문턱에 이른 대한민국 신세대답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경기에 임했다.

스포츠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국력의 상징이다. 투자와 지원 없이는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들다. 우리와 체격조건이 비슷한 일본과 북한의 선전(善戰)에 자극받은 대한축구협회의 투자도 큰 힘이 됐다. 축구는 개인 기량뿐 아니라 조직력과 협동심이 요구되는 경기이기에 이번 성과가 더욱 값지다.

우리 사회에는 부모의 과보호로 온실 속의 화초처럼 나약한 청소년이 많다. 경쟁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미래세대를 강하게 키워야 나라도 부강해진다. 이번 소녀 월드컵의 우승을 바라보며 우리는 개인이건 기업이건 국가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못 이룰 게 없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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