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강유정]기후변화에서 배우는 생활의 지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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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 때문에 시끄럽다. 8월 한 달 중 24일간 비가 왔다고 한다. 유례없이 더웠던 여름이었는데 더위가 가시기 무섭게 비가 엄습했다. 사람들은 이제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로 바뀌었다느니, 지금 내리는 비는 장맛비가 아니라 스콜이라느니 말이 많다. 이렇게 기후의 변화에 대해 호들갑 떨었던 게 비단 요즘만의 일일까?

고대로부터 사회적 어른은 기후에 대한 해석을 감당해야만 했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에 공포를 느꼈고 그때마다 사회적 지도자는 자연 현상의 변화 가운데서 은유를 읽어냈다. 그 독법은 불안한 사람을 위로하기도 했고 간혹은 오만한 권력에 대한 경고가 되기도 했다.

바야흐로 21세기인 지금, 급격한 기후 변화를 종교적 혹은 샤머니즘적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사람은 없다. 수치와 통계를 근거로 했을 때 지구 온난화가 최근 기후 변화의 유력한 원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그래프의 경사도가 지나치게 가파르다는 점일 테다. 수식어가 무색하리만치 최근의 기후 변동이나 변화는 급격하다.

사람들은 자연의 흐름을 과학적으로 이해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최근의 이러한 현상은 과학적 인과관계에 대한 자신감이 오만에 불과했다고 말해 준다. 기상 예보가 있다고는 하지만 예측이 빗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인류가 저지른 자연파괴의 경고

생각해 보면 이런 기후 변화는 수세기 전부터 예상되었던 바라고 할 수 있다. 윈스턴 처칠은 20세기를 일컬어 지금까지 우리가 무심코 해왔던 일의 결과를 보게 될 세기라고 말한 바 있다. 정신분석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환경문제를 재앙의 씨앗이 될 혼돈의 유인자라 부르기도 했다. 혼돈의 유인자라는 말도 우리가 저지른 일이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다는 점에서 처칠의 말과 유사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최근 기후의 역습은 인류가 저질렀던 수많은 원인 행동의 결과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앨 고어는 지구 온난화 문제와 관련해 세계를 떠돌며 강의를 했다. 그의 강의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은 재미있는 통계 하나를 소개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 베이비붐이 일어나고 당시 세계인구는 23억 명에 달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기에 접어들 2005년 세계인구는 65억 명이 되었고 이 정도 추세라면 2050년이면 91억 명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인구 23억 명이 되는 데 기원 이후 1900년이나 흘렀지만 3배가 되는 데에는 고작 100년이 걸리지 않는다. 앨 고어는 지나치게 급증한 인구수를 지구 온난화의 첫 번째 주범으로 꼽는다. 이들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이들이 2차적으로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가 지구의 외투를 두껍게 만들고 온기를 가둔다는 가설이다.

돌이켜보면 지구라는 유기체는 독자적인 체계를 통해 자신의 항상성을 유지시켰다고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콜레라나 페스트와 같은 질병은 인구수가 급증했을 때 발병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인간에게는 대재앙이라고 할 수 있을 질병이나 전쟁이 지구 입장에서 보자면 항상성 유지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봄이면 생명이 피어나고 가을이면 사그라지듯 인간의 삶과 죽음도 지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호흡처럼 자연스러운지 모른다.

과학과 의료기술의 발전 덕분에 인류는 유행병의 고난에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국지전은 있지만 전쟁과 같은 대량살상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지구는 지진해일(쓰나미)이나 태풍, 폭염, 혹한, 폭우 등의 다른 재앙을 주었다. 인류가 오래전 정복했다고 믿은 기후는 예측 불가능한 재앙의 형태로 인류를 엄습한다. 기후는 우리가 지금껏 학습하고 대비한 인류의 지식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인류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구의 돌변은 일종의 문명적 퇴행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갑작스러운 사태 앞에서 마치 기원전 비문명인처럼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지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연스러운 열평형 회복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라는 유기체는 결국 항상성을 찾아갈 것이다.

마음 졸이기보다 담담히 받아들여야

중요한 점은 예측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이다. 많은 사람이 기후 변화를 걱정하지만 대개 화젯거리일 경우가 많다. 그저 오랜만에 만나 나눌 말이 없을 때 이상한 기후는 좋은 대화거리가 되어 준다. 누구나 다 기후를 걱정하는 듯하지만 사실 아무도 기후 변화를 진심으로 걱정하지는 않는다.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했다. 비가 잦고, 태풍이 무서웠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사실상 그 경고를 해석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법이다. 결과를 마주하는 세대로서 필요한 것은 호들갑이 아니라 변화이다. 담담히 변화할 것, 어쩌면 이야말로 기후 변화의 메시지일지 모른다.

강유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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