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헌진]두만강의 눈물

동아일보 입력 2010-09-13 03:00수정 2010-09-13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친숙한 이 가사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중반에 등장한 ‘눈물 젖은 두만강’의 도입 부분이다. 대중가요 작곡가 겸 평론가 고 황문평 선생의 저서들과 북한에서 발행된 ‘민족 수난기의 가요들을 더듬어’에는 그 곡의 탄생기를 이렇게 기록했다.

“작곡가 이시우가 예원좌라는 악단에 소속되어 만주 순회공연을 떠났는데 두만강 강변 투먼(圖們) 여관방에서 밤새 흐느껴 우는 여인의 통곡소리를 들었다. 독립군 남편을 찾아 만주벌판을 헤매다가 남편이 체포돼 처형됐다는 사실을 알고 운다는 사정을 전해 듣고 이 곡을 지었다.”

우리 민족은 남한에 살았건 북한에 살았건,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살았건 80여 년 동안 이 노래를 불렀다.

주요기사
기자는 1일 이 노래가 탄생한 중국 지린(吉林) 성 투먼의 두만강 강변에 있었다. 지난달 31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곳에서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다리를 건너 중국 방문을 마쳤다. 김 위원장의 비밀 방중을 뒤쫓은 취재 끝에 마주한 두만강은 감회가 새로웠다.

강에는 황톳물이 흘렀다. 비가 꽤 온 탓도 있지만 평소에도 물색이 푸르지는 않다고 한다. 주민들은 북한 쪽에서 합류하는 지류에서 광산 폐수가, 투먼 쪽에서 합류하는 지류에서 공장 폐수가 흘러든다고 전했다.

강변의 뱃사공은 그대로였다. 비록 이들이 모는 뗏목은 관광상품일 뿐 실제로 강 건너편에 닿을 수는 없었지만…. 이들은 깊이가 1m 안팎에 불과한 두만강에서 관광객을 태운 뗏목을 삿대로 저어 북한 땅 30cm 앞까지 몰고 갔다. 북한 땅에 접안하지 못할 뿐 옛날 두만강을 건너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했다.

뱃사공은 4명이었고 이들 중 3명은 조선족 동포였다. 마흔을 넘긴 동포 뱃사공들과 함께 나루터 간이매점에 앉았다. 두서없는 한담이었다. 현재는 금지됐지만 어릴 적에는 수시로 오가면서 북한 동무들과 어울렸던 추억,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이 잘살아 중국으로 쌀을 보냈다든가, 강 건너 북한 땅에 친척이 있다든가, 한국인 노인 가운데 어떤 이는 여기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는 등.

한국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한 뱃사공은 한국 취업비자를 받아 이달에 한국으로 떠난다고 했다. 매점의 조선족 아주머니도 남편이 한국에서 수년째 일하고 있으며 혼자 아이를 키운다고 했다.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는 사이 좁은 두만강 건너편에는 깡마른 북한 경비병 2명이 나타나 낚시를 했다. 이날 두만강 강변에는 이처럼 서로 다른 체제 속에 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한 민족, 세 나라 사람이 등장했다.

김 위원장의 전격 방중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북-중 경협 소식이 나온다. 흥미롭게도 대부분 두만강 유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투먼 시는 북한의 청진항 부두 사용권과 청진항까지의 철로 사용권을 확보했고 이달 시험 운용에 들어간다. 투먼에서 두만강 하류 쪽으로 약 42km 떨어진 훈춘(琿春) 시는 북한의 나진선봉지구와의 지지부진했던 경협에 속도를 내고 있다.

‘눈물 젖은 두만강’에서 ‘내 님’은 일제에서 해방된 조국이었다. 오늘의 ‘내 님’은 같은 민족이 사이좋게 사는 모습일 게다. 과연 북한이 최근의 보도처럼 두만강 유역에서 변화의 신호탄을 실제 쏘아 올릴까. 이런 움직임이 커지고 커져 ‘눈물 젖은 두만강’에 응축된 민족의 한을 마침내 풀어줄까.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과 기대를 품어보았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