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보수 교육감들은 다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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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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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세력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무한경쟁교육’이라고 공격해 왔다. 학교를 ‘경쟁과 차별과 특권의 정글’이라고 몰아세웠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6·2교육감선거에서 16명의 전국 교육감 가운데 6명의 좌파 교육감을 배출하는 재미를 봤다. ‘진보 교육감’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제 목소리 내기는커녕 좌파에 동조

하지만 ‘MB 교육은 경쟁교육’이라는 그들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현 정권 들어 교육의 경쟁적 요소는 크게 후퇴했다. 특수목적고는 현 정부로부터 ‘사교육비의 주범’이라는 집중 포화를 맞고 문을 닫기 직전까지 몰렸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정부는 특목고 입시에서 필기시험조차 폐지해 버렸다. 현 정권이 경쟁적 요소를 높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교육정책으로 자율형사립고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정을 들여다보면 경쟁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다. 추첨으로 지원자의 합격과 불합격을 가리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에서는 더 뒤로 물러섰다. 정부가 대학을 상대로 강력하게 확대를 요구해온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경쟁 좀 그만하자’는 정책의 표본이다. 수능시험은 EBS 방송강의에서 70%를 출제한다고 한다. 2014년 입시부터는 수능 과목 수를 축소한다는 소식이다. 문제를 미리 알려주고 과목 수를 줄이면 수능 경쟁은 크게 약화된다.

이처럼 ‘허위 사실’을 유포해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은 7월 1일 취임 이후 특히 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특유의 투쟁심을 발휘해 정부와 이리저리 충돌하면서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됐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정작 투쟁심을 드러내야 할 사람은 보수 교육감들이다. 정부의 교육정책이 지금처럼 인기영합적으로 흐르면 국가와 사회, 학생 개개인의 미래에 큰 독(毒)이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느 누구도 경쟁이 달갑지는 않지만 인재를 기르는 교육에서는 불가피한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보수 교육감들은 모든 사람이 침묵하더라도 국가교육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이슈들을 쏟아내고 있는 반면 보수 교육감들은 취임 이후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드러난 것은 이달 10일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16개 시도교육감 가운데 5명은 진보 교육감, 11명은 보수 교육감으로 분류됐다. 이들은 회의를 마치고 두 가지를 정부에 건의했다. 한 가지는 전면 무상급식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원평가를 교육감 자율에 맡겨 달라는 것이었다.

결단 없이 교육의 質높일 수 없다

전면 무상급식은 좌파 교육감들의 핵심 공약사항이지만 어느 쪽의 공약임을 따지기에 앞서 교육적으로 옳지 않은 판단임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학교의 살림살이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빠듯하다. 교육에 쓰일 예산을 빼내 무상급식 쪽에 투입하면 공교육 품질은 더 추락할 수밖에 없다. 보수 교육감들은 문제점을 뻔히 알면서도 좌파 포퓰리즘과 덜컥 손을 잡았을 뿐 아니라 무책임하게도 정부에 떠넘겼다. 초중고 전면 무상급식을 하려면 연간 2조9000억 원의 엄청난 예산이 든다.

현행 교원평가제는 지금도 아무 구속력이 없는 허울뿐인 제도이지만 전국 교육감들이 교원평가의 자율권을 달라는 것은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교사들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 학생들을 잘 가르치도록 해야 할 교육감들이 오히려 교사의 무사안일에 앞장선 셈이다. 이 정도라면 보수 교육감들의 정체성부터 의심해야 할 지경이다.

진보 교육감은 일하기 편하다. 듣기 좋은 말만 하면 된다. 시험 안 보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면 학생들이 두 손을 들어 환영할 테고 ‘머리와 복장을 너희들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면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질 것이다. 교사들에게 평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공언하면 교육감 임기 4년은 쉽고 편하게 보낼 수 있다.

반대로 보수 교육감의 길은 태생적으로 험난하다. 미국 워싱턴에서 교육개혁에 앞장선 한국계 교육감 미셸 리는 교원노조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수시로 시위에 시달렸다. 학생들의 학력을 높여주고 미래의 길을 열어주려면 교원들에게 잘 가르치라고 채근할 수밖에 없다. 그 대신에 수요자인 학부모로부터는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

한국의 보수 교육감들도 공교육 수준을 높이려면 곳곳에서 싸움을 각오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학생을 위하는 길이다. 더구나 정부가 몸 사리며 뒤로 물러설 때 보수 교육감들은 옳은 길에 대한 신념을 갖고 할 일을 해야 한다. 우리 보수 교육감들에게 그만한 사명감과 전투정신이 있는지 의문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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