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내 안전을 위한 전신스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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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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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의 일이다. 텔아비브행 엘알 이스라엘 항공기로 갈아타기 위해 홍콩공항에 도착했다. 긴 기다림 끝에 탑승수속(체크인)이 시작됐다. 그런데 이건 수속이 아니라 ‘취조’였다. 세 명의 이스라엘 여성 보안요원은 한 명씩 면담하며 꼬치꼬치 물었다.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느냐, 어디서 왔느냐, 이스라엘 방문 목적은 뭐냐, 짐은 언제 누가 꾸렸고 공항에 올 때까지 어디에 보관했느냐, 전달해 달라고 부탁 받은 짐은 없느냐 등등.

탑승수속 후에도 승객은 수속대를 떠날 수 없었다. 마지막 승객(당시 약 300명)이 수속을 마친 2시간 반 내내 주필리핀 이스라엘 대사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그 다음은 아래층 수하물 창고였다. 거기엔 승객의 짐이 놓여 있었다. 다시 한 명씩 불러 가방에 수상한 게 들어갔는지 살피라고 시켰다. 또 두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보딩 게이트 앞. ‘이제야 비행기에 오르려나 보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세 번째 보안검색이 시작됐다. 여기까지 오는 새 누군가 접근해 물건을 건네지 않았는지를 또 물었다. 짜증은 극에 달했고 몇몇 승객은 거칠게 항의했다. 그래도 그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했다.

때는 이미 출발시간을 훨씬 넘어선 시간. 버스가 엘알 항공기로 향해 달리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홍콩경찰 특수기동대 차량의 근접호위를 본 것이다. 항공기 주변에는 경찰과 지상요원의 삼엄한 경비망이 펼쳐져 있었다.

오후 10시 40분. 드디어 이륙했다. 수속 개시 다섯 시간 만이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이게 끝이 아니었다. 기내식 트레이(쟁반)의 바닥종이에 쓰인 글귀 때문이다. ‘이 음식은 엘알 항공이 철저한 보안과 관리하에 준비한 것이니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음식물을 이용한 테러까지 대비한 철저한 보안시스템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엘알 이스라엘 항공의 보안검색은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다. 물론 지금은 더욱더 정밀한 투시형 짐 검색기 덕분에 절차와 시간이 크게 줄었다. 당시 정밀검색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까다로웠다. 상식을 뭉갠 몰상식의, 승객 입장은 무시한 관료적 태도로 비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귀국길에 내 생각은 바뀌었다. 그 모든 게 나를 위한 안전조치라는 사실을 깨쳐서다. 내가 탄 비행기에 폭탄이 반입됐다면, 그래서 사고가 났다고 가정한다면 그 대답은 자명하지 않을까.

10월 1일부터 국내 4개 국제공항이 전신스캐너 6대를 가동한다. 전신스캐너는 신체를 X선 혹은 고주파로 스캔해 화면상에 보여주는 정밀한 신체검색장치다. 기존 금속탐지기로는 찾아내기 어려운 세라믹 제품의 칼과 무기, 분말과 액체폭약을 쉽게 찾아낼 수 있어 현재 미국 41개 공항에 142대 등 세계 11개국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모니터를 통해 내밀한 신체 윤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그 이미지의 유출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사용 중지를 권고한 장비다.

틀린 지적도, 그럴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보안시스템이 남이 아닌, 바로 나의 안전을 위한 것임을 알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어떨지. 엘알 이스라엘 항공처럼 ‘화가 치밀게 할 만큼’의 정밀한 보안검색 없이도 안전하고 쾌적하게 항공여행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내밀한 신체 윤곽의 노출 우려’와 ‘수백의 귀중한 생명’은 저울질될 수 없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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