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택]벼랑 끝에 걸린 法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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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6일 20시 00분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최근 “민주당 측 요구를 받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불구속 기소되도록 힘을 썼다”고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사건 처리는 검찰이 독자적으로 결정한다. 더는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사실이 아니라면 민주당이 더 난리를 피울 법한데 왠지 조용하다.

한나라당 측의 부탁이 있었건 없었건 검찰이 독자적인 결정으로 한 전 총리를 불구속 기소했다면 이는 정상인가. 검찰이 10억 원 가까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여러 차례 소환했는데도 한 전 총리는 불응했다. 그런 피의자의 신병을 체포영장이나 구인장으로 확보해 신문 조서를 받지도 않고 불구속 기소하는 것이 검찰의 통상적인 일처리 방식이었나. 검찰은 사건의 탈(脫)정치화를 위해 그렇게 처리했다고 한다.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 결정에 탈정치화라는 기준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정치적 고려를 법적 고려보다 우선시하는 검찰이 바로 정치검찰이다. 한 전 총리 불구속 기소는 스폰서 스캔들로 약점이 잡힌 검찰이 정치적 결정으로 법치를 훼손한 사례라고 나는 본다. 법치는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고 권력자도 주권자도 모두 법의 지배에 복종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리다. 사람에 따라 법 적용이 달라지고 법보다 권력의 힘이 세면 법치국가라고 할 수 없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나 국가정보원 같은 사정기관들이 민간인들을 사찰하고 불법을 저질렀다면 권력에 의한 법치 훼손이라는 차원에서 중대한 문제다.

이명박 정부는 좌파 폭력세력과 ‘떼법’이 법치를 훼손한다고 말해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권력이 법치의 위기를 조장하는 측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 특히 대통령의 특별 사면권은 유권자의 건망증과 비리 불감증 그리고 지역감정과 결합해 비리 정치인의 때를 벗겨주는 제도로 전락했다. 사면권 남용은 재판의 신뢰성을 추락시키는 치명적 반(反)법치다. 선진국 정치인들은 사소한 윤리 규정 위반으로도 정치생명을 잃는다. 비리 정치인의 재기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재·보궐 선거운동 현장에서도 법치를 무시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이광재 강원지사의 직무정지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정치인을 후보로 내세운 정당이 책임을 느끼고 반성해야 할 사안이다. 이 지사의 직무정지는 법에 따른 당연한 조치일 뿐이다. 그런데도 “강원도 사람들을 잘못 건드린 것이다.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거나 “나를 찍어야 이 지사를 지킨다”는 주장이 판친다. 이들에게 법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심지어 변호사인 야당 의원은 “재판 상황을 알고도 이 지사를 선출했으니 국민의 뜻을 반영해 재판하는 게 법 원칙에 부합한다”며 여론재판 정치재판이 옳은 양 몰고 갔다.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정치를 위해 법치를 포기하라고 한다면 정상적인 국가로 존속할 수 없다.

법이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엄격하면 법치가 바로 설 수 없다. 돈 있는 사람은 전관예우 받는 비싼 변호사 덕분에 무죄가 되고, 힘 있는 사람들은 법을 안 지켜도 무사하다면 ‘유전무죄(有錢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 공화국’이 아니고 뭔가.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권력과 정치인 그리고 국민이 제각각 법치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법치가 무너지면 갈등과 분열이 갈수록 극심해지는 나라를 지탱할 방법이 없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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