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타임오프 고시 앞둔 임태희 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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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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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법에 떠밀려 ‘타임오프’ 고치면 나라의 불행”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평소 온건한 이미지 때문에 ‘신사(紳士)’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장관 취임 이후 그는 13년간 유예됐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타임오프(Time off·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 기준안 확정,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설립신고 반려 등 어려운 현안을 헤쳐가고 있다. 일련의 노사관계 선진화 정책은 노동계의 반발에 부닥쳐 지금도 진행형이다. 전공노는 지난달 초부터 임 장관의 자택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식당에서, 그리고 7일 집무실에서 임 장관을 만나 노동현안등에 대해 들어봤다.》
“세금으로 위기넘긴 은행들 노조가 도입 반대하는 건 모순
노조운영비 더 내놓으라고 집단행동 하는게 정상인가”


―이번 주 고시할 타임오프 기준안을 놓고 노동계와 정치권의 반대가 심합니다.

“만약 전체 근로자와 중소기업 노동조합이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을 기준을 만들었다면 나는 양심상 바꿀 겁니다. 하지만 대다수 노조가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을 몇몇 대형 사업장 노조가 반대한다고 손대는 것은 맞지 않아요. 대형 노조들은 (조합비 인상 등을 통해) 조금씩만 분담하면 얼마든지 떳떳하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금융산업노조는 반대하면 안 됩니다. 은행이 (국민 세금으로) 공적자금 받고 과거에는 받지 않던 각종 수수료를 올려서 엄청난 수익을 내는 것을 생각하면 노조도 이제 국민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7일 타임오프 기준 확정에 따른 국내 노사관계 변화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7일 타임오프 기준 확정에 따른 국내 노사관계 변화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여당에서도 선거를 의식한 탓인지 조정하려는 분위기가 있는데요.

“(확정 안은)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겁니다. 몇몇 노조가 반대한다고 고친다는 것은 장관으로서 수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 파기 이유가 돼서도 안 되고 당도 수정하려고 해선 안 됩니다. (노동계가) 국회에서 ‘떼법’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정권이 바뀌면 타임오프 한도가 늘거나 원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불행입니다. 노조는 자주적 운영이 원칙이에요. 세상에 노조운동 하면서 경영자에게 노조운영비 더 내놓으라고 집단행동을 한다는 게 정상입니까. 나라의 발전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으려는 정권이라면 그렇게 하겠죠.”

―김태기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장과 동서 간인데 위원장 선임 때 고민스럽지 않았습니까.

“그건 사적인 관계죠. 공정하게 잘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별로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목적이 있었다면 오히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위촉하지 않았을 겁니다.”(단국대 교수인 김 위원장은 노동분야 전문가로 노동계도 인선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있다)

―여하튼 노조법 개정, 타임오프 한도 같은 굵직한 노동현안을 처리하면서 느낀 게 많을텐데요.

“제도는 연착륙해야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그런 말 하기 어렵죠. 취임 전에 노동법은 정치법이라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툭하면 국회로 가서 정치공방이 이뤄지고, 집단행동하고…. 노동법이 정치법으로 계속 남아있는 한 발전이 없습니다. 이런 말도 이른바 직업적 노동활동가 때문에 나옵니다. 노동법이 정치법이 아니라 민생법이 되도록 만들어야지요.”

―고용노동부(고용부)로의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고용부는 고용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입니다. 정부 일자리 예산은 첫째 일자리 없는 사람, 둘째 일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자리를 주는 것이 목표죠. 하지만 정부예산이 그렇게 집행되고 있지 않아요. 우리가 책임을 지고 전 부처의 관련 사업을 정리하고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지금 일자리사업이 26개 부처청에서 179개 사업, 8조9000억 원의 돈을 쓰고 있습니다. 중구난방식이다 보니 효율도 떨어지고 중복된 사업이 너무 많습니다.”

―일자리 예산의 비효율성이 얼마나 심각합니까.

“기관별로 하다 보니 기관별 칸막이가 너무 심해요. 예를 들어 정부사업을 대행하는 어떤 곳은 노동부 여성부 보건복지부 등 4개 기관의 사업을 대행해요. 그런데 전화번호가 노동부용, 여성부용 등 4개나 돼요. 예산 회계처리상의 문제 때문인 것 같은데 노동부에서 받은 예산으로는 노동부 전화비를 따로 내는 식이에요.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래서 부처 간 협의를 하고 있는데 타 부처에서 ‘왜 노동부가 우리 사업에 왈가왈부하느냐’고 합니다. 노조법 문제만 정리되면 내가 직접 매달려 전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당초 경제부처 장관 하마평에 오르다가 노동부 장관이 됐는데요.

“노동부 장관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잘 모르던 분야의 공부를 많이 했어요(그는 재정경제부 과장으로 일하다 정계에 입문했다). 이쪽(노동계)에서 보니 경영계도 바꿀 것이 많고 (경영은) 노사가 함께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피부로 느끼게 됐습니다.”

―장관을 해보니 국회의원으로서 행정부를 감시할 때와 어떻게 다릅니까.

“갑을이 바뀐 것인데…. 국회에서 지적받을 때 목소리 크다고 강한 게 아니라 옳은 소리가 무섭고 할 말이 없더라고요. 소리만 큰 것은 소음이지…. 일부 의원이 ‘네’ ‘아니요’로만 답하라고 하는데 그러려면 자기가 사안을 완벽하게 꿰고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 몰고 갈 때나 가능합니다. 대개는 그런 실력이 없죠.”

두 시간 넘게 인터뷰를 하는데도 식당 손님 중에 임 장관을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 궁금해졌다.

―좀 더 ‘큰일’을 하려면 얼굴을 많이 내밀어야 하지 않나요.

“(인지도가) 약하죠. 하지만 노조법 개정 때 내가 인지도만 생각하고 전면에 나섰다면 아마 일이 되지 않았을 거예요. 그냥 밀어붙이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국회가 법 개정을 안 하는데 난들 어떻게 하느냐’고 자빠지면 나는 빠져나갈 수 있을 테고…. 결국 엉망이 된 뒤에 ‘거 봐라. 내가 뭐라고 했느냐’고 생색내면 ‘임태희 말이 맞았다’는 평가는 받겠죠. 하지만 나라는 혼란스러워졌을 겁니다. 정치인은 대중의 인기가 필요하지만 두 발을 모두 대중에 두는 사람은 지도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 발은 대중의 인기와 다른 곳에 두는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23년 된 단파라디오가 애장품… 국악 즐겨 들어▼

임태희 노동부 장관 집무실에 있는 23년 된 단파 라디오.
임태희 노동부 장관 집무실에 있는 23년 된 단파 라디오.
정부과천청사 노동부 장관 집무실에는 아주 낡고 투박한 단파 라디오가 하나 있다. 임태희 장관의 취미 중 하나가 이 라디오로 국악을 듣는 것이다. 7일 오후 집무실을 찾았을 때도 그는 명창 김영임의 회심곡을 듣고 있었다. “…쓰디 쓴 것은 어머님이 잡수시고, 마른자리는 아기를 뉘며…사랑에 겨워 하시는 말씀이 은자동아, 금자동아….”

이 라디오는 공무원 시절인 1987년 해외출장을 갔다가 영어공부용으로 샀다. “한국에서 영국 BBC방송을 듣고 싶어서 당시 200달러나 주고 샀는데 BBC는 안 들리고 북한방송만 들리더라고요. 허허.” CD, MP3, DVD가 넘치는 시대에 구식 단파 라디오를 20년이 넘게 쓰고 있을까. “뭐 그냥, 아직도 음악만 잘나오는데….”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는 업무처리에서는 대충 얼버무리거나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산업재해 보상업무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이 자사 직원들의 산재보상에 너무 관대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공단 측이 ‘일부 도덕적 해이도 있지만 민원인의 폭행 등 사고가 많은 것도 이유’라는 취지로 적당히 답하자 임 장관은 의원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어떤 이유로도 이 같은 행동은 설명할 수 없다. 철저히 감사한 뒤 고치겠다”고 말했다. 이후 공단에는 대대적인 감사가 실시됐다.
:임태희 장관:

―출생연도: 1956년

―출생지: 경기 성남시

―학력: 서울 경동고-서울대 경영학과-서울대 대학원 경영학과

―경력: 행정고시 24회, 재정경제부 산업경제과장, 국회의원(3선),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좌우명: 待人春風持己秋霜(대인춘풍지기추상·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냉정하라)

―즐기는 운동: 배구, 등산

―가족: 부인과 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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