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등학교에서 평준화 제도는 뜨거운 감자다. 평준화 제도가 긍정적인 면 외에 부정적인 면도 함께 가져왔기 때문이다. 평준화의 가장 큰 문제는 능력과 적성이 다른 아이들이 동일한 형태의 교육을 받는다는 데 있다. 이는 분명히 불행한 일이다. 보완책은 학생 개개인의 능력과 적성을 고려해 다양한 과목을 선택하는 교육과정 운영이다. 현재와 같이 경직된 단위제 교육과정 아래서는 학생의 교육과정 선택권이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젠 고등학교에 학점제를 도입해 학생의 능력과 수준을 고려한 맞춤식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
미국 영국 싱가포르는 오래전부터 학점제를 운영했다. 중국도 고교에 학점제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런 나라의 특징은 학교에 개설된 과목을 학년 구분 없이 학생의 능력, 수준, 흥미에 따라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특정 대학이나 전공에 지원하기 위한 고교 트랙 이수조건(이수학점이나 수준)을 명확히 제시해 학생은 자신의 대학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다. 고교에서 난이도 높은 과목을 이수할 경우 대입에서 가산점을 받기도 한다. AP과목(고등학생이 고등학교에서 수강하는 대학 학과목)을 이수하고 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획득하면 대학 학점을 인정받는 제도도 마련했다.
우리나라 고교에서의 학점제 도입은 외국의 경험을 참고하되 현실을 감안하여 추진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첫째, 학점제는 학교 운영의 자율권이 보장된 자율고와 교원인력 및 학교시설이 충분한 일반계 고교에 우선 적용하되 시범운영 후 모든 고등학교에 전면 시행하도록 교육과정 개정 시 학점제 실행조건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둘째, 모든 교과에 학년 간 교차선택이 가능한 학점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영어나 수학과 같이 계열별 또는 수준별 단계 설정이 가능한 교과는 학년에 관계없이 학생의 학습 속도와 수준에 맞는 학습이 가능하도록 운영해야 한다.
셋째, 학생의 성취 정도를 고려한 다양한 단계 및 단계 내 수준을 설정함으로써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확대해야 한다. 단계 설정을 위한 기본 전제로 성취수준 평가를 통해 기초, 기본 및 심화학습 집단을 편성할 필요가 있다. 학생은 자신의 흥미와 적성, 진로 결정에 따라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과목 외에 새로운 과목 개설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속진제 유급제 재이수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계열별 또는 수준별 단계 설정 과목의 경우, 필요 시 진단검사(Placement Test)를 실시하고 통과한 학생에게는 다음 단계의 이수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한다.
학점제 도입은 단순히 현행 단위제 교육과정을 학점제 교육과정으로 바꾼다고 해서 실현되지는 않는다. 학점제는 우선 학년 체제나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학생 개개인의 흥미와 능력에 맞는 수준의 과정을 밟을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학점제가 정착되면 학교교육이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곳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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