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지난주 100여 가지 기능이 추가된 아이폰 4.0버전을 선보였다. 여러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고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에 광고를 실을 수 있게 하는 등 핵심기능 7가지만 봐도 놀라운 진화다. 올여름 시판될 새 버전에는 게임센터도 추가된다. 게임센터를 통해 친구를 초대하거나 온라인으로 상대를 찾아 함께 게임을 할 수 있다. 애플은 휴대전화로 하는 모바일 게임을 글로벌 콘텐츠의 핵심 중 하나로 중시한다.
하지만 국내 아이폰 사용자들은 현재 게임을 내려받기조차 쉽지 않다. 애플은 한국의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이 요구하는 ‘모든 게임물의 사전심의’를 거부해 한국 앱스토어(응용프로그램 장터)의 게임 분류항목을 통째로 삭제했다. 구글도 약 5000건이 올라 있는 한국 안드로이드마켓의 게임 항목을 내달에 없앨 예정이다.
그러면 게임법의 보호 대상인 한국 청소년들이 사전심의를 받지 않은 게임에 접근할 수 없을까. 그렇지도 않다. 국내 계정이 아니라 미국이나 홍콩 계정으로 애플리케이션을 구입하면 그만이다. 폐쇄된 게임 항목 대신 엔터테인먼트 항목에 슬그머니 올라온 게임을 내려받을 수도 있다.
게임 규제에 있어서 세계는 자율심의 쪽으로 가고 있다. 정부가 심의와 규제에 적극적인 나라는 한국과 호주 중국 등 몇몇에 불과하다. 특히 누구나 응용프로그램을 만들어 올리고 소비자에 의해 평가되는 오픈마켓까지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인터넷 규제가 심한 중국도 한국만큼 까다롭지 않다.
얼마나 커질지 모를 오픈마켓에서 과거 방식의 사전규제로 긴 줄을 세우는 것은 무리다.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오픈마켓 게임은 더 신속하게 처리한다지만 역부족이다. 이러니 컴투스 게임빌 등 국내 게임업체들도 한국 마켓을 등지고 미국 같은 데로 달려간다. 결국 국내 게임업계와 소비자가 모두 손해를 본다. 미국과 일본의 앱스토어에서 인기 높은 10개의 게임 중 해당국 제품이 6, 7개에 이르는 걸 보면 국내 게임업계는 국내에서 큰 시장을 빼앗기는 셈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감안해 2008년 11월 오픈마켓 게임은 등급분류의 예외로 인정하는 내용의 게임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작년엔 등급분류를 오픈마켓 사업자의 자율에 맡기자는 법안도 발의됐다. 스마트폰이 국내에 도입되기 직전인 작년 9월 국회에서 게임법에 관한 논의가 있었을 때 법안이 처리됐더라면 좋았겠지만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과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에서 한국은 입법 및 규제 부문에서 점수가 깎여 정보통신기술(ICT) 이용 순위가 하락했다. 게임법이 바로 그런 사례다. 이번 4월 국회에서라도 법 개정이 마무리된다면 정부가 세금을 써가며 육성하려는 콘텐츠산업 게임산업의 진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방선거 등 ‘국회 현안’ 때문에 ‘디지털 시대의 민생법안’이라는 게임법 개정안 처리가 또 미뤄져선 안 된다. 정부가 설정한 ‘모바일 강국(强國)’의 꿈은 법안 하나에도 좌우될 수 있다.
내년 말이면 미국에서 무선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스마트폰 보급률이 종래의 피처폰 보급률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및 관련 소프트웨어야말로 커지는 시장이다. 한국의 게임 이용자와 개발자를 모두 해외로 내쫓지 않으려면 게임 관련 법규를 기술발전 트렌드에 최대한 맞춰야 한다. 법규 하나가 시장과 산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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