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대통령과 위원장의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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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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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나 북이나 사흘 뒤 설이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설을 크게 쇠라고 해왔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실토대로 강냉이밥도 제대로 못 먹는 그들이 설을 얼마나 근사하게 쇠겠는가. 설 이틀 뒤인 16일은 김 위원장의 68회 생일이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충성맹세 모임이나 업적연구토론회에 가야 한다. 9∼17일은 ‘2·16 경축 영화상영 순간(旬間)’이라 북한 각지에서 김 위원장 우상화 영화가 집중 상영된다.

주민보다 애완견이 더 소중한 金

재작년 이명박 정부가 옥수수 5만 t을 주겠다고 했을 때 북은 필요 없다고 했다. 옥수수가 아닌 쌀을 40만 t씩 퍼주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길들여볼 요량이었다. 정부는 작년 10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옥수수 1만 t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또 거부당했다.

지난달 북은 생각을 바꿔 옥수수 1만 t을 받겠다는 전통문을 보내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김 위원장 직속의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남한 당국자들의 본거지를 날려 버리기 위한 거족적 보복성전을 벌이겠다”는 성명을 냈다. 주민은 허기져 쓰러져도 김 위원장의 애완견은 평양까지 불러들인 프랑스 수의사한테서 건강검진을 받는다. 핵 개발비용과 지도층의 사치만 줄이면 2400만 북한 주민이 아사만은 면할 수 있다고 한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이 대통령 되면 전쟁난다”는 주장이 심심찮았다. 그러던 사람들은 지금도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꾸짖으며 김대중 노무현 시대로 돌아가라고 압박한다. 북은 남쪽 일부세력이 맞장구를 쳐주니 보복성전이니, 짓뭉개버리겠다느니 하는 협박도 할 만하다.

북한 정권의 핵심세력은 전문가집단이다. 김 위원장부터가 1994년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권력을 세습하기 20년 전부터 ‘어떻게 하면 체제를 유지하고, 또 남쪽을 제압할지’ 도를 닦은 사람이다. 당군정(黨軍政) 주축들도 수십 년째 한 우물을 파왔다. 대통령이라야 겨우 5년, 실무당국자는 2∼3년도 안돼 바뀌는 남쪽 정부를 우습게 볼만하다. 일사불란한 북과는 달리 남쪽은 정치권, 언론, 심지어 정부조차 중구난방이니 ‘흔들 구석’이 훤히 보였을 법도 하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대남공작을 진두지휘했다. 김일성은 1973년 4월 “남조선에는 고등고시에 합격만 되면 행정부 사법부에 얼마든지 잠입해 들어갈 수가 있다. 머리가 좋고 확실한 자식들은 데모에 내보내지 말고 고시준비를 시키도록 하라”는 지령을 공작원들에게 내렸다. 1987년 6·29선언 직후 김일성은 “전두환이가 백기를 들었다. 우리의 민주투사들을 상도동과 동교동으로 접근시키고 김영삼과 김대중으로부터 인정받도록 하라. 그래야 장차 그들의 후광을 업고 제도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지시했다.

MB, 북핵폐기 역사적 획 그을까

특히 김대중 노무현 집권기, 북은 물 만난 고기처럼 각 분야를 휘저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2대 좌파정권은 북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면서 결국 핵 개발의 협력자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국민이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절반의 이유’다. 그럼에도 좌파세력은 이명박 노선이 남북 긴장을 폭발시킬 것처럼 불온시하며 김대중 노선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한다. 이는 북의 비핵화를 더 멀어지게 하는 대북정책을 답습하라는 소리다.

퍼주기에 익숙했던 북이 지금 심한 금단현상 때문에 해안포 방사포를 쏘아대며 양동작전 교란작전을 쓴다. 남쪽 일부세력이 북한테 ‘그러는 건 좋지 않다’면서 동시에 정부더러 ‘대북적대정책 때문에 북이 저런다’는 식으로 양비(兩非)하는 행태는 무책임의 극치다. 북의 시비 걸기 포사격은 ‘기동(機動) 없는 앉은뱅이 사격’인데 아마도 북방한계선(NLL)을 넘는 순간 더 많은 타격을 입을 것을 염두에 두기 때문일 것이다.

북에 꽃놀이패는 없다. 남쪽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 거꾸로 김정일 집단이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키게 한다. 설혹 이명박 정부가 과거 10년처럼 퍼주기를 한다 해도, 북이 핵을 버리고 개방의 길로 나서지 않는 한 북한경제는 연명(延命)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북한 체제의 절대적 한계 때문이다.

물론 지금으로선 북의 핵 포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강성대국 완성의 해로 선포한 2012년까지 세계가 부인할 수 없는 수준의 핵무장에 성공해 이를 강성대국의 증거로 삼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68세라지만 건강연령은 80세쯤인 김 위원장이 3대 세습의 동시완성에 매달릴 것이다.

북한 핵의 완성이냐 폐기냐가 걸린 앞으로 2, 3년은 이명박 정부의 임기와 일치한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두 전임자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대북정책의 역사적 획을 그어야 할 대통령이다. 그 역할의 의미는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무겁다. 남북정상회담도 그 틀 안에 있음이 시대정신이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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