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관치 논란과 별개로 금융권 사외이사制개선해야

  • 동아일보

은행들의 모임인 은행연합회가 오늘 ‘사외이사제도 모범규준’을 발표한다. 은행계 지주회사는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을 가급적 분리하고 이사회 의장을 사실상 매년 새로 선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사외이사의 임기를 최장 5년으로 제한하고, 사외이사의 20%를 매년 바꾸는 방안도 들어간다.

은행 사외이사제도는 외부의 전문지식을 경영에 보태고 은행장을 감시 견제하기 위해 1997년 도입된 이후 계속 역할이 강화돼 지금은 은행 지배구조의 핵심이 됐다. 그런 가운데 은행장과의 유착, 도덕적 해이 등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KB금융지주 사외이사가 대표로 있던 회사가 KB국민은행으로부터 전산용역을 따냈고, 사외이사들이 같은 날 열린 여러 개의 회의에서 수당을 중복 지급받아 말썽이 됐다. 사외이사들은 새로운 사외이사를 누구로 뽑을지, 자신들이 받을 수당 액수를 얼마로 할지까지 스스로 결정했다.

금융감독원은 작년 초에 이미 문제점을 파악했지만 개선안은 이제야 나온다. 법 개정사항이 아니어서 조치를 더 서두를 수 있었다. 금융당국은 KB금융 회장 선출이 진행 중일 때 특정인(강정원 국민은행장)의 피선에 제동을 걸기 위해 사외이사들의 개인적 과오를 끄집어냈다. 이런 앞뒤 바뀐 접근이 관치금융 논란을 키웠다. 금융당국은 특정 인사가 아니라 은행의 지배구조와 그 개선방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은행연합회의 모범규준은 ‘최선의 관행(best practice)’을 모아놓은 것이지 법규는 아니다. 민영은행은 주주와 예금자의 이익, 은행의 건전성 등을 고려해 지배구조를 정하면 된다. 예를 들어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면 견제가 어려워지고 겸직하지 않으면 경영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각 은행 특성을 감안해 선택할 일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내용과 절차의 투명성은 확보돼야 한다. 모범규준을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투자자가 알 수 있게 공시(公示)해야 한다.

현재 은행 사외이사들은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경영진의 영향력 때문에 사외이사 업무에 필요한 독립성을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지적된다. 은행과 은행지주회사의 사외이사 가운데 금융전문인은 10%도 안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적대로 은행 사외이사 업무가 형식적인 과외(課外)활동으로 전락하지 않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증권 보험사들도 사외이사제도의 취지를 잘 살리고 있는지 점검해 제도 및 운영 개선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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