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법원장, ‘인사권 나눠 갖자’는 판사 요구 인정하나

  • 동아일보

21일 열린 서울중앙지법 판사회의에서 법관 인사와 법원장의 재량권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이른바 진보 성향 판사들의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 소속 일부 판사는 “법원장의 인사권을 제한하고 판사들이 인사권을 나눠 갖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대법원은 올해 초 신영철 대법관 파동 이후 ‘법원이 1년에 한 번 이상 사무 분담에 관한 전체회의를 하도록’ 새 내규를 마련했다. 신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 시절 광우병 촛불시위 사건의 배당을 둘러싼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터라 사무 분담에 관해 판사들의 의견을 들어보라는 취지였다. 사무 분담은 판사들을 형사 재판부와 민사 재판부, 단독 재판부와 합의 재판부 등으로 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날 회의는 내년 인사를 앞두고 열린 것이니 이런저런 의견들이 나올 수는 있었다.

그러나 헌법상 ‘법관의 독립’은 재판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지, 법관이 자기 인사까지 직접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법원 내 보직 배정이나 업무 분담은 어디까지나 대법원장으로부터 위임받은 법원장의 고유 권한이다. 법원장은 판사들의 기수와 근무평점,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업무를 분담시킨다. 혼자 독단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대개 수석 부장판사들과 상의해 결정한다. 과거에도 정치 바람을 타는 검찰과 달리 법원 인사는 비교적 공정하다는 평가가 법조계에서 나왔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시국 관련 형사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한 법관들을 인사로 압박한 경우가 더러 있긴 했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 그런 인사는 상상도 할 수 없다.

판사들은 대개 업무량이 과중한 민사 재판부보다는 업무량도 상대적으로 적고 나름의 소신을 펼 수 있는 형사 재판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판결을 통해 ‘사회 변화’를 꾀하려는 판사들은 더욱더 형사부를 희망할 것이다. 판사들이 선호하는 자리는 한정돼 있어 인사에서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키기는 애초부터 어렵다.

업무 분담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판사들의 의견을 듣고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판사 스스로 인사권을 갖겠다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그런 식이면 법원의 규율이 무너질 뿐 아니라 재판 역량과 윤리성에서 문제가 있는 판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제재도 할 수 없게 된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런 논란이 빚어진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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