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화학공학 재료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영향력지수가 높은 우수 저널 8개에 실린 국내외 한인 과학자의 논문은 지난해 총 545편으로 전체 논문 중 6%를 차지했다. 이 중 국내 과학자의 논문은 217편으로 40% 정도에 그친다. 특히 네이처와 사이언스를 포함한 최우수 저널 4개에 한인 과학자가 낸 논문 51편 중 6편만이 국내 연구자의 논문이어서 약간은 실망스럽다. 해외 한인 과학자 대부분이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외국 대학의 젊은 학위과정 학생이나 박사 후 연구원이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세계적으로 나노기술을 선도하는 최고 권위자인 미국 일리노이대의 존 로저스 교수의 연구실에는 학생과 박사 후 연구원 38명이 연구를 하는데 이 중 박사 후 연구원 15명과 학생 6명이 한인이다. 지난 3년간 로저스 교수가 낸 91편의 논문 중 50편이 한국인이 참여해 작성한 논문이다. 로저스 교수는 물론이고 일리노이대의 세계적 명성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서는 미국이 나노기술을 선도하는 데 국내에서 교육받고 학위를 받은 젊은 한인 연구자가 지대한 기여를 하는 셈이다.
이와 같이 최근 과학기술계에서 젊은 한인 연구자의 활약상이 놀랍다. 특히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해외 유명 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했던 과학영재 교육과 BK21사업 같은 이공계 대학원 육성 정책이 결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잘 교육된 이공계 학생이 정부의 다양한 지원을 받으며 훌륭한 연구 환경을 갖춘 국내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해외 유명 대학에서 실력을 발휘하는데 이런 결실이 국내의 연구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한국 과학기술 수준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를 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많은 연구자가 국내에서 계속 연구하지 않고 외국으로 향한다. 연구능력이 왕성한 국내 젊은 박사들이 외국대학 유명 교수의 훌륭한 연구 자원이 되고 있다.
왜 국내 박사가 국내의 유수한 대학을 두고 외국 대학으로 갈까?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박사를 수용할 수 있는 대학과 연구소에서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서다. 낮은 임금 수준은 물론이고 체계적인 직제도 갖추지 않아 임시직으로 여기는 실정에서 우수한 젊은 박사가 외국 대학의 러브콜을 마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대학 교수나 연구소 연구원 채용 시 해외 연구경험을 선호하는 분위기도 문제가 된다.
올해 세계 대학평가에서 서울대와 KAIST가 100위 안에 들었지만 국민의 기대에는 많이 미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세계 수준의 연구대학을 가질 수 있을까? 국내 대학이 양적 팽창에서 벗어나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는 점은 잘 알려진 해법이다. 가장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20대와 30대 연구자의 유용한 활용만이 국내 대학 연구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는 1000여 명의 교수 이외에 2000여 명의 박사후 연구원이 일한다. 일본의 대학은 정교수 이외에 조교 및 조교수라는 직책을 갖고 젊은 연구자가 세계적인 연구대학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우리도 애써 길러낸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가 국내에서 계속 자긍심을 갖고 연구를 하도록 과감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고 해외의 유명 학자를 유치해 국내 대학의 지명도를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 애써 길러낸 국내 학생이나 젊은 연구자가 자신의 활동과 이력 관리를 위해서 외국보다 국내를 선택할 때 국내 대학이 진정 세계 수준의 연구대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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