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대통령만 잘나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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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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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드라이브에 속도가 붙으면서 정치권이 넘쳐나는 현안의 해일에 휩쓸려 허우적대고 있다. 세종시, 4대강, 노동관계법, 새해 예산안,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지방행정체제 개편, 개헌, 선거구제 개편 등 현재진행형인 대형 이슈들은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대부분 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사안들이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최근 이 대통령과의 조찬간담회에서 “대통령이 일을 많이 하니까 한나라당 의원들이 죽을 맛이다. 온갖 과제를 쏟아내 고생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2일 “현안이 너무 많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 수 없다. 외국어고 폐지 문제는 민주당의 정체성과 직결돼 있지만 현안이 너무 많아 일일이 대응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잰걸음으로 청와대와 보폭을 맞추느라 바쁜 한나라당이나 여권의 밀어붙이기에 제동을 거느라 경황이 없는 민주당이나 이 대통령의 일 욕심을 감당하지 못하는 점에선 피차일반이다.

이 대통령의 의욕을 탓할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은 나라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갖고 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국리민복을 생각할 것이다. 지난달 30일자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이 일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46.0%였고, 9일자 국민일보 조사에선 50.0%를 기록했다. 많은 국민이 이 대통령의 노고를 인정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통령 혼자 잘나가고 여야는 싸움만 하느라 지탄을 받는 현 상황은 아무리 대통령제라고 하더라도 정상은 아니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여당은 무조건 그것을 실행하는 데 앞장서고, 야당은 결사적으로 반대만 하는 구도에선 건강한 정당 정치가 자리 잡기 힘들다. 내년 6월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어 여야의 이전투구는 해를 넘기면서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이 정국에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주요 어젠다를 선점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처리하고 여야가 충분히 협의하도록 긴 호흡으로 정책의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세종시의 경우 정부 수정안을 보고 판단할 일이지만, 예컨대 논란이 큰 4대강 사업의 경우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융통성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본보 조사에선 ‘계획대로 추진’이 26.9%, ‘추진하되 규모를 줄여야’가 36.2%, ‘지금이라도 중단’이 30.1%였다.

야당에 대해서도 생떼를 부리며 반대만 한다고 외면만 해서는 곤란하다. 이 대통령이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과 만나 허심탄회하게 국정을 논의했으면 한다. 여권이 내놓은 정책의 취지가 아무리 훌륭해도 야당의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지 않으면 국정을 균형 있게 추진하기 어렵다. 야당 역시 특정 지역과 계층의 지지를 받는 국민의 대표이고 모든 국민을 품고 가는 것은 대통령의 책무이다.

이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한국 경제를 가장 먼저 살려내는 등 많은 성취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뜻대로 일을 못했다고 남은 임기 중에 그걸 벌충하려고, 혹은 역사에 남는 일을 하려고 굳이 과욕을 부릴 필요가 없다. 이 대통령과 여야가 모두 국민의 박수를 받을 수 있게끔 꼬인 정국을 푸는 단초는 이 대통령이 쥐고 있다.

한기흥 정치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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