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여야 분단정치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23일 20시 20분


코멘트
여야 원내대표 회담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지만, 며칠 전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대표 간의 회담 예고 기사를 접했을 땐 새삼스럽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꼭 따로 시일을 정해서 만나야 하나.’ ‘회담을 해서 무슨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고 회담을 하기로 한 것도 뉴스거리가 되나.’ 서로 만나 대화하고 타협하는 게 기본인 여야가 마치 휴전협상 하듯 격식을 갖춰 회담해야 하는 나라, 만나는 것 자체까지 관심거리가 되는 나라, 그런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의 사무실은 모두 국회 본관 2층에 있다.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다. 전화 한 통이면 언제든 3층 귀빈식당에서 만날 수 있다. 두 사람은 더러 이런저런 국회 내외 행사에 함께 참석한다. 회담 사흘 전인 16일에도 민주당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의 출판기념회장에서 나란히 앉았다. 더구나 같은 상임위(운영위)에 소속돼 있다. 안 대표는 4선(選), 이 대표는 3선으로 정치의 속성을 알 만큼 알 만한 관록이다. 그런데도 지금 두 사람의 정치적 거리는 남북만큼이나 벌어져 있다.

지금의 원내대표는 과거 대통령이 당 총재이던 때나 3김(金)의 ‘제왕적 당 대표’ 시절 원내총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상과 대표성이 높다. 원내정당화의 취지대로라면 국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의정활동은 당 대표가 아니라 원내대표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두 당의 원내대표는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나. 당의 눈치나 살피고 과거 원내총무처럼 당의 심부름꾼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건 아닌가.

여야 간엔 주의주장만 넘칠 뿐 대화는 없다. 쌍방향이 아닌 일방통행 정치이다. 대통령이 격주로 라디오연설을 하니, 이젠 당 대표들까지 덩달아 나서 주의주장을 쏟아낸다. KBS MBC SBS CBS 불교방송 평화방송의 라디오에서는 아침마다 여야 정치인들의 강변(强辯)이 홍수를 이룬다. 정치인이 등장하는 TV 토론프로그램은 이성과 논리의 토론장이 아니라 오로지 상대방을 거꾸러뜨리려는 싸움판 일색이다. 국회에서는 대변인들의 성명전(戰)과 의원들의 기자회견전이 춤을 춘다. 흡사 남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형 확성기를 통해 서로 선전선동 대결을 펼치던 과거의 모습 그대로다.

언론을 통한 모든 주의주장은 고스란히 흔적을 남긴다. 기록된 말에 대한 책임을 의식하다보면 강성 발언은 또 다른 강성 발언과 강성 행동을 부르기 마련이다. 여야 간엔 지금 이런 대치 전선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곳곳에서 마치 백지에 도장을 찍듯 주의주장과 선전선동을 마구 내갈기는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판국인데, 원내대표끼리 만난들 무슨 대화가 되고 무슨 타협이 가능하겠는가.

영국의 의회(하원)정치를 흔히 크리켓 경기에 비유한다. 모든 경기가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고, 상대가 있고,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하고, 철저하게 룰과 심판의 판단에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 의회정치는 어떤가.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충족하고 있는가. 여야 간 ‘분단정치’가 만병의 근원이다. 핵심은 소통이다. 원내대표들이 일차적 키를 쥐고 있다. 무슨 일이 있든 없든 간에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정기적으로 만나보라. 진정으로 뭔가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말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