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송우혜]눈부셔라, 금빛 마라톤

  • 입력 2009년 9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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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의 생명은 빠름이다. 100리가 넘는 머나먼 길을 쉬지 않고 빨리 달려야 한다. 그래서 마라톤은 우리 인류가 지닌 빨리 오래 달리는 능력의 극점을 보여주는 스포츠이다. 마라톤의 본질은 느림이다. 말 자동차 비행기 등등, 인류의 이동 속력을 빠르게 신장시키는 여러 형태의 도움을 일절 거부한다. 인간의 다리에만 의지해서 오직 한 걸음 또 한 걸음 번갈아 내디디면서 달리고 또 달려서 겨우 목표점에 도달한다. 어찌 이토록 엄숙한 스포츠가 있는가! 어찌 이토록 화려한 스포츠가 있는가! 그래서 각양각색의 경기가 만발한 꽃처럼 다투어 경연하는 올림픽에서도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이라고 일컫는다.

현재 문명의 발달에 따라 날이 갈수록 인류가 살아가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제는 웬만한 일에서는 대개 초 단위로 속도를 다투며 산다. 그에 대한 인류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반발인가. 가장 대표적인 느림의 스포츠 마라톤이 전에 없이 화려한 각광을 받는다. 전에는 소수의 선수만이 외롭고 힘겹게 뛰던 마라톤대회에 이제는 수만 명의 마스터스가 참가해 함께 달린다. 함께 달리면서 함께 즐기고 함께 기쁨을 나눈다.

어디 그뿐인가. 마라톤에 참가하여 뛰는 이를 지원하고 후원하는 가족과 친지까지 대거 몰려들어서 마라톤대회의 영광은 배가되고 환희도 배가된다. 그런 현상은 전 지구상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리하여 이제는 어느 나라 어느 대회든지 간에 마라톤대회는 ‘인류가 누리는 최상의 잔치’로서의 의의와 그에 따른 풍요로움을 즐기고 있다. 참으로 복되고 기껍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78년 전, 이민족의 압제 아래서 갖가지 고난과 질곡으로 고통 받던 우리 땅에서도 마라톤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동아일보사가 이 땅에서 최초로 개최한 마라톤대회였다. 1931년부터 해마다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이 땅이 길러낸 선수가 참가하여 최선을 다해서 달릴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하고 환호했다. 그들의 모습이 이민족의 억압에 눌려 신음하던 어두운 마음에 꿈과 희망과 보람을 주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마라톤대회가 길러낸 선수 중 한 사람인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대회에 참가해 금메달을 쟁취했을 때의 감격과 환희는 차마 형언할 수 없도록 격렬했다.

그렇게 시작된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동아마라톤대회는 격동으로 점철된 이 땅의 역사와 함께 울고 웃으면서 연년세세 이어져 왔다. 이제 그 의연한 정신과 당당하고 오랜 관록에 걸맞은 최상의 상찬을 받았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시행한 전 세계 마라톤대회 평가에서 최고의 등급인 ‘골드대회’로 인증 받았다. 골드대회로 인증 받기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열리는 수많은 마라톤대회 중에서 ‘2009년도 골드대회’로 인증 받은 것은 불과 11개 대회뿐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중국에 이어서 세 번째이다.

‘금’은 아름답다. 누가 뭐래도 ‘금’은 ‘금값’을 지닌다. 그래서 ‘골드대회’로서의 명품 인증 소식은 매우 반갑다. 2009년에 골드대회 인증을 받은 마라톤대회를 국가별로 따져본다. 미국 3개, 독일 3개, 중국 2개, 영국 1개, 프랑스 1개, 일본 1개로 모두 6개국이다. 내년 상황이 어떨지 모르지만 2009년도 골드대회 인증 국가별 통계에 슬쩍 대입하자면, 한국은 이제 마라톤대회의 운영에 관한 한 세계 7위국 안에 들었다고 자리매김할 수 있다. 세계 최상위층 국가 위상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2010년도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동아마라톤대회가 크게 기다려진다. 국제적으로 인증된 골드대회로서의 후광 때문에 마라톤 코스가 금빛으로 빛날 것 같다.

송우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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