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환익]우리만의 경제모델은 무엇일까

  • 입력 2009년 8월 11일 03시 03분


지식경제 시대의 최대 수혜자는 아마 각 분야의 세계적 석학일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어느 기존의 경제학 이론으로 속 시원히 경제상황을 분석하고 예측할 수 없는 혼돈 속에서는 이들이 하는 말 한마디의 비중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의 출장 강연료도 천문학적 숫자이다. 특히 한국은 이들의 황금시장이다. 앨빈 토플러, 존 나이스빗, 기 소르망, 토머스 프리드먼은 특히 한국 사회에 친숙해진 인물이다.

이들의 말은 대부분 뻔하다.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아시아가 중심이 되고, 환경과 지식서비스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이 중심 산업으로 떠오르고, 기업의 사회적 책무가 더욱 중요해지며, 창조적 기술혁신을 통한 신성장동력 발굴이 한국이 살길이라는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얘기는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이다. 왜 자꾸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오마에 겐이치 같은 사람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우리 경제를 뚜렷한 근거도 없이 혹독히도 폄하해 온 사람이다. 지난달에도 그는 제주에서 열린 강연에서 “세계경기 침체가 오래갈 것이며 일본보다 한국이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처방이랍시고 “중국 내수시장과 일본의 노년층 시장을 공략하라”는 누구나 아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고 갔다.

오마에 겐이치의 엉터리 예측

오마에 겐이치가 한국 경제를 향해 1999년에 던졌던 말을 살펴보면 그의 예측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한국은 반도체, OA기기, 휴대전화 등 겉만 번지르르한 제품을 만들어 팔면서 이만큼 할 수 있다고 뻐기고 있다. 한국이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이 일본이 이미 만들고 있는 분야라면 의미가 없다. 한국이 시장을 개방하면 끝까지 살아남을 기업은 없다. 한국 자동차메이커 가운데 일본 기업과의 정면 승부에서 살아남을 회사는 하나도 없다.” 한국이 외환위기 과정에서 생존 투쟁을 하고 있을 때 장담한다면서 던진 말이다. 지금 와서 보면 도대체 무엇 하나 제대로 들어맞은 얘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2006년에는 한국이 일본을 너무 일찍 졸업했다고 하면서 아직은 더 일본을 배우라고도 했다. “어느 순간 일본으로부터 핵심부품이나 기계장비가 수입되지 않게 되면 한국 기업이 어떻게 될까요?”라는 궤변도 모자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타결이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니며 일본은 FTA 없이도 잘하고 있다”는 2007년의 발언을 떠올리면 과연 그가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경제평론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가 한국 경제를 비판하면서 항상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던 일본 경제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여전히 세계 경제의 롤 모델이고, 아시아 후발국의 맏형 역할을 제대로 하는가? 물론 일본은 한국보다 경제 규모나 기술력 등 경쟁력 면에서 앞서 있지만 많은 산업 분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한국과의 격차도 상당 부분 좁혀진 상태다. 일본이 그렇게 세계 경제의 교본이 되기를 원했던 평생고용, 유착적 하도급체제, 생산라인의 고정성은 오히려 고비용 구조의 원인이 됐다. 급기야 일본 최대의 전자업체인 샤프 경영진으로부터 “일본은 핵심 생산설비 분야도 해외이전을 고려해야 될 때가 되었다”는 발언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해외시장 개척 능력, 의사결정구조에서는 한국보다 나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잠재력을 저평가해서도 안 되겠지만 무조건 일본을 따라할 이유가 없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많은 석학이 몰려와서는 ‘돈이 돈을 버는’ 신자유주의 경제 원리의 탁월성을 한국 젊은이의 머리에 심어주었다. 마진 적은 제조업의 중요성은 감퇴되고 장보따리 주부까지 주식 단타전에 몰입하는 ‘생활 금융지식 최강국’이 됐다. 그러나 이는 월가의 붕괴로 더는 우리에게 귀화될 수 있는 모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개입에 의한 분배 체제와 민간 주도의 성장 전략을 적당히 비벼 놓은 유럽식 경제 운영 모델 도입을 지난 정부 일각에서 거론했으나 이 역시 곧 들어가 버렸다. 경제 모델 확립을 위한 우리 스스로의 확신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한국의 강점 전수하게 됐으면

세계 경제 질서가 근본적인 재편 과정에 들어가는 것 같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경제 모델을 만들어야 되겠다. 의사결정의 스피드, 정부정책 투입 과정의 효율성, 기업 간 치열한 경쟁, 해외 현지화 능력, 금 모으기와 일자리 나누기에서 보여준 신속한 결집력이 새로운 경제 모델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먼 한국 경제이다. 세계적인 석학의 얘기에서 배울 점은 받아들이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림으로써 우리만의 강점을 살린 새로운 경제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 우리 석학도 우리만의 ‘극복 모델’을 어마어마한 강습료를 받으며 전 세계에 전수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조환익 KOTRA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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