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헌법 수난 속에서 맞은 憲裁20년

  • 입력 2008년 9월 1일 02시 59분


1987년 6월 항쟁의 민주화 열망을 담아 만들어진 헌법에 따라 이듬해 출범한 헌법재판소가 오늘 성년(成年)을 맞았다. 헌재는 지금까지 500건의 법령 등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제9차 개정헌법이 낳은 최고 제도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년 전에 처음 도입된 헌법재판 제도가 국민 속에 뿌리내리기까지 적지 않는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헌법의 위상과 존엄성, 국민의 기본권 의식을 높이고 법치주의를 튼튼히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국가기관의 신뢰도와 영향력 조사에서 헌재가 1위를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헌법이 처한 현실은 아직도 수난의 연속이다. 5월 이후 석 달 이상 계속된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를 가사로 붙인 노래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버스를 마구 부수고 경찰을 붙잡아 린치를 가하는 무법천지를 만들면서 헌법 제1조를 노래하는 것은 헌법에 대한 모독이며,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헌법 해석이다. 우리는 전쟁과 격심한 이념의 대립 속에서도 헌법의 대원칙인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시장 경제를 흔들림 없이 지켜냈다. 대한민국의 지향점인 헌법적 가치를 부인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정부도 능률과 편의주의로만 흐르다 보면 헌법이념에 어긋나는 정책을 만들어내기 쉽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신행정수도특별법을 비롯해 사립학교법 신문법 등이 대표적으로 위헌 결정을 받거나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회도 당리당략에 기울어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법률을 만드는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헌법의 제정권자는 주권자인 국민이다. 대통령과 국회 그리고 사법부도 헌법의 규범 안에서만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헌법의 소중한 이념과 가치가 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실천적 규범으로 작동하려면 헌법재판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돼야 한다. 헌법에 대한 국민교육이 필요하다. 헌재 창립 2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헌법재판소장 회의가 헌법 문제에 관해 각국의 경험과 지혜를 교환하고 공유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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