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천광암]日규제폐해 골치… 한국은 좀 나을까

  • 입력 2008년 8월 12일 03시 01분


도쿄(東京) 도심에 있는 일본 정부합동청사 12층 한구석에는 ‘국토교통성 수도기능이전기획과’라는 부서가 자리를 잡고 있다.

공무원 8명이 소속된 이 부서는 연간 2억 엔(약 20억 원)가량의 예산을 들여 수도 이전에 대한 조사와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이 부서의 존재가 보여주듯 일본에서는 한때 수도기능이전계획이 상당히 구체화된 단계까지 진행된 적이 있다.

하지만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등 세계적 도시에 대비한 도쿄의 경쟁력 향상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수도 기능이전론’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수도기능 이전 후보지로 결정됐던 지방자치단체들까지 관련 조직 및 예산을 줄이거나 없애고 있다.

그런데도 ‘수도기능이전기획과’가 남아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당시 관련법을 제정한 의원들이 ‘한 성청(省廳)의 판단으로는 (관련 법률을) 폐지할 수 없다’고 대못을 박아 놨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특정한 제도, 규제, 관료조직의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 밖에도 적지 않다.

일명 ‘리조트법’이라고 불리는 종합보양지역정비법은 1990년대 대대적인 리조트 개발 거품을 조장한 악법이라고 결론이 난 법률이다.

그런데도 국토교통성에는 이 법을 근거로 한 조직이 남아 있다. 리조트 개발구상을 폐지하는 지자체의 신청 내용을 심사한다는 것이 존속 명분이다.

또한 일본 전역에는 ‘납세저축조합’이라는 독특한 조직이 6만 개나 있다고 한다.

납세저축조합이란 한마디로 주민들이 서로 감시해 세금 체납을 방지하는 조직으로 1951년 출범했다. 군국주의 시대에나 통용됐을 만한 시대착오적인 제도가 무려 57년간이나 살아남아 온 것이다.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듯 규제나 행정조직은 한번 만들어지면 존재 가치가 사라진 이후에도 꿋꿋이 살아남는 속성을 갖고 있다.

더구나 이들은 질긴 생명력을 창조적인 에너지로 활용하기보다는 민간부문의 창의적 활동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데 사용하고 혈세마저 낭비한다.

일본이 유독 관료주의가 강한 나라라고 하지만, 한국은 일본보다 규제의 폐해가 덜 심각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일본에도 수도 기능이전 관련 법률처럼 다음 정권이 쉽게 손질하지 못하도록 ‘대못질’을 한 사례가 일부 있지만 노무현 정부 때처럼 무더기로 해댄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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