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상운]빗장 건 명륜당-경회루 폐가로 변하면

  • 입력 2008년 4월 28일 02시 59분


“숭례문 때문에 성균관의 전통이 끊기게 생겼습니다.”

최근 종로구청은 서울 명륜동 성균관의 부속시설인 명륜당을 일방적으로 폐쇄했다. 숭례문 화재로 문화재청의 관리 방침이 대폭 강화된 데 따른 것이다.

명륜당은 문묘에서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 분향제를 거행할 때 유생들이 옷을 갈아입고, 향을 갖고 나오는 곳이다. 성균관의 고응배 총무부장은 “구청의 폐쇄 조치로 명륜당을 출발해 대성전에서 향을 사르던 전통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고 한탄했다.

고궁들에도 빗장이 걸리고 있다.

2월 문화재청은 2004년부터 제한적으로 개방했던 경복궁 경회루를 안전 점검을 위해 1년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경회루는 조선시대 왕들이 만찬을 열던 곳으로 2002년 국제축구연맹 환영만찬, 2003년 국제증권감독기구 총회, 2004년 국제검사대회가 열렸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숭례문 화재로 문화재에 대한 활용보다 보호관리가 우선순위가 됐다”며 “1년 후 재개방할지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2월 서울시가 ‘고궁을 국제회의장으로 활용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라며 내놓은 경희궁과 운현궁에 대한 국제회의장 활용 계획도 없던 일이 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관광객 유치까지 염두에 두고 서울시의회에 보고한 지 이틀 만에 숭례문 화재가 발생해 계획 자체가 백지화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숭례문 화재로 문화재들에 빗장이 걸리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무원들의 보신주의라고 질타한다.

김정호 향토문화진흥원 이사장은 “숭례문 화재의 원인은 문화재 개방이 아니라 당국의 관리 부실이었다”며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효령대군 10대손이 1703년에 지은 99칸짜리 자택인 ‘선교장’의 이강백 관장은 “전통 한옥은 적절히 활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폐가가 된다”며 “선교장이 300년 넘게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도 거주자가 때에 맞춰 불을 때 습기를 제거하고, 목재로 된 마루판을 체중으로 눌러 틀이 변형되지 않도록 해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서는 1294년에 지은 대성당 안에 서점이 들어섰다. 유럽에서는 수백 년 된 건물을 아파트나 호텔로 활용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문화재 보존은 활용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유럽인들에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식의 우리 정책은 어떻게 비칠까.

김상운 사회부 su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