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택균]헤이그 청년답사단 가슴에 싹튼 ‘조국’

  • 입력 2007년 7월 18일 03시 01분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 헤이그 특사의 발자취를 100년 뒤에 따라가는 청년 답사단이 처음부터 나라와 민족에 대해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달 27일 서울을 떠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직후만 해도 엄숙하거나 진지한 분위기는 찾기 힘들었다.

이색 여행에 대한 기대로 가볍게 들떴다고 해야 할까.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는 일부 학생은 기내에서 떠들썩한 모습을 보여 주변 승객들의 눈총을 받았다.

블라디보스토크 호텔에서 밤늦게까지 시끄럽게 노는 학생들을 보며 답사단을 인솔한 목사들이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치열했던 독립운동 역사의 현장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답사단의 눈빛은 변하기 시작했다.

안내판조차 없는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가의 유허비, 낡은 임대아파트로 변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사관 건물, 약소국을 외면하는 현실에 절망하다 숨져 간 특사의 헤이그 시내 숙소….

주권과 독립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껴 보지 못한 청년이 대부분이었지만 제대로 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 주려던 선열의 흔적을 보며 숙연해졌다.

긴 여정의 끝이던 14일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묘역. 흉상 앞에 국화를 바치고 차례로 묵념을 올리는 모습에서 출발 때의 가벼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저녁 햇살을 받고 선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에서 조국과 민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당연한 듯 누리는 자유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축구장에서나 힘차게 외치는 ‘대한민국’ 네 글자가 수많은 희생의 산물임을 절감하는 듯했다.

나흘 밤을 시베리아 횡단철도 안에서 보내며 광활한 대륙을 직접 눈으로 체험한 일도 스스로 성숙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답사단 서기를 맡았던 방요한(22) 씨는 “TV나 학교 수업을 통해 막연히 들었던 얘기가 먼 과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은 가까운 역사였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본보의 이번 행사가 이뤄 낸 가장 큰 결실은 이 같은 젊은이의 정신적 성장일 것이다. 멀고 험한 길을 가면서 생긴 애국심을 더 많은 한국의 젊은이가 느낄 때 세 특사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리지 않을까.―헤이그에서

손택균 오피니언팀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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