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규제 완화’ 빠진 대통령과 財界 만남

  • 입력 2006년 12월 29일 22시 58분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재계를 대표하는 4대 그룹 총수와 만났다. 하지만 왜 만났는지, 만난 덕에 경제와 민생에 희망이 생겼는지 궁금하다.

덕담이 오갔지만 대통령은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4대 그룹 총수 접견에 이어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성과보고회’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관련해 “현재의 정부안(案)은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낸 것”이라고 말해 재계의 ‘전면 폐지’ 요청을 분명하게 거부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 기술 개발뿐 아니라 평창 올림픽 및 여수 박람회 유치에 대한 재계의 협조까지 요구해 일일이 답변을 얻어 냈다. 정상적인 대화라고 보기에는 지극히 일방적이었다. 설혹 재계 인사들이 대통령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고 해도 그것을 ‘만남의 성과’로 본다면 오산(誤算)이기 쉽다. 전에도 이런 식의 만남은 실효(實效)를 거두지 못했다.

규제 완화는 우리 경제의 핵심 과제다. 마침 윌리엄 오벌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신임 회장은 “한국 정부의 규제에 대한 예측이 어려워 기업 환경이 퇴보하고 있다”며 “지난해 한국이 유치한 외국인 직접투자 규모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은 이날 “정부는 경영 환경의 어려움을 없애도록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런 원론적 발언은 내외국인의 투자 확대에 도움이 안 된다.

더구나 대통령이 재계를 ‘특권 집단’으로 규정하며 “이런 집단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공언하는 상황에서는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애정과 기업의 투자 의욕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소수(少數)의 재계를 때리면 다수의 ‘배아픔’을 한순간 달래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는 것이 배고픈 사람을 더 늘리는 악정(惡政)임을 국민은 수년째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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