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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월 1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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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젠틀맨·gentleman)는 영국의 장미전쟁(1455∼1485)으로 귀족의 수가 줄어든 뒤 의회의 빈 자리를 채운 젠트리(gentry)라는 신분 집단에서 비롯됐다. 당시의 젠트리는 중소 지주가 주축이었는데 근대 이후 젠틀맨에는 성공한 상공업자, 성직자, 관리자 등이 망라됐다. 여성과 약자에 대한 배려, 정중한 매너, 엄격한 절제, 공동체에 대한 헌신 등으로 상징되는 오늘의 ‘영국 신사’는 바람직한 남성상으로 통한다. 여성들의 이상형이기도 하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10일 신사 나라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사회적 존경 회복’ 운동을 선언하고 나섰다. ‘훌리건의 나라’로 불릴 만큼 공동체 정신과 사회적 기강이 무너지고 있어서 우선 서로가 존경하는 마음부터 갖자는 것이다. 런던에선 금요일 저녁이면 취객들의 고성방가, 공공 기물 파괴, 청소년들의 패싸움을 곧잘 볼 수 있다. 이들은 이제 ‘분노(憤怒) 관리’나 ‘소비 억제’ 같은 재활 훈련부터 받아야 한다.
▷한국도 신사도의 부재(不在)가 심각하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배타적인 편 가르기와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날을 새우는 정치권이나, 대화 대신 투쟁을 문제 해결의 최고 수단으로 여기는 이익집단의 모습에선 상대를 배려하는 신사도를 찾을 수 없다. 오죽하면 ‘법 중 최상위의 법은 떼법’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개인도 신사다움을 지키려면 매사 손해 보기 일쑤다. 한국은 ‘신사의 나라’가 되기엔 아직 갈 길이 먼 ‘투사(鬪士)의 나라’처럼 보인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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