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조선의 전통 지명(地名)도 자기 입맛에 맞게 고쳤다. 녹색연합이 최근 백두대간이 지나는 32개 시군의 산, 봉우리, 마을 이름 등을 조사했더니 22곳의 지명이 일제의 ‘창지개명(創地改名)’ 상태로 남아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왕(王)’자를 일본 왕을 의미하는 ‘황(皇)’ 또는 ‘왕(旺·日+王)’으로 바꾼 경우. 이로 인해 서울 인왕산(仁王山)이 인왕산(仁旺山)으로, 속리산 천왕봉(天王峰)은 천황봉(天皇峰)으로 바뀌었다. 인왕산은 광복 50주년인 1995년에야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마을의 유래를 무시하고 쉬운 한자로 바꾼 경우도 있다.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는 강원 양구군 구암리(龜岩里)와 경남 함양군 구평(龜枰)마을이 각각 구암리(九岩里)와 구평(九枰)마을로 바뀌었다. 전북 장수군 용계(龍鷄)마을은 고려 말 이성계가 잠이 들었다가 닭 울음소리를 듣고 깨어나 왜적을 무찌른 곳인데 일제강점기 때 용계(龍溪)마을로 바꿨다. 백운봉 인수봉 노적봉을 일컫는 삼각산(三角山)은 한강 남쪽에 남한산이 있다는 이유로 북한산(北漢山)으로 고쳐졌다.
▷일제는 이 밖에도 전국의 고봉(高峰)에 쇠말뚝을 박고, 태봉(胎封)에 묻혀 있는 왕가(王家)의 태항아리를 도굴해가기도 했다. 왜구가 임진왜란 당시 전국 명산의 혈(穴)을 끊어 이후 한반도에서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도 떠돌았다. 3·1절에 또다시 민족의 수난을 되새기게 된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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