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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17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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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총독부 기록 입맛대로 해석 ▼
KBS는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 프로그램을 전례 없이 여러 차례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1930년대 무자비한 일본 군국주의가 광기(狂氣)의 전쟁을 벌이던 살벌한 시기,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에서 검열관이 확대경을 들이대고 기사 한 줄, 단어 하나의 의미까지 샅샅이 까뒤집어 해석하면서 기사의 내용과 편집을 철저히 통제하던 상황에서 두 신문은 발행되었다. 그런 두 신문이 ‘반민족적’이었다는 것과, 그중 특정신문이 “왜놈신문보다 더했다”는 예고방송을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것을 보면서 책임 있고 공정해야 할 공영방송의 자세가 이래도 되는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송 내용 가운데 일본 의회도서관에서 찾아냈다는 조선총독부의 두 가지 비밀 자료 ‘조선출판경찰개요’와 ‘언문신문통제안’은 그 존재가 이미 알려진 것이고, 국내에서도 영인 출판되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자료이다. 그렇다고 KBS가 일본에 가서 처음 발견한 것인 양 보도했다는 부분을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해석상의 왜곡이다. 이 자료는 총독부가 얼마나 치밀하고도 은밀하게 두 신문의 폐간을 획책했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문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는 두 신문과 총독부의 ‘합작’에 의한 폐간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극비자료 ‘언문신문통제안’에 의하면 총독부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시국의 중압과 준엄한 단속에 의해 최근 그 필치(筆致)가 현저히 온건화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의구심을 떨치지는 못한다. 두 신문은 전쟁 기간임에도 “언론기관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는 책임감과 열의가 부족하고 적극적 불온성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소극적 불온성을 지속하고 있어 차압(差押) 또는 삭제를 당하는 일이 여러 차례에 이른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민족의식이 흘러넘쳐(橫溢) 매일신보를 복멸(覆滅)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폐간시킴으로써 민족의식을 잘라 없애버리고 매일신보의 발전을 도모해 민심을 ‘선도’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총독부가 치밀한 계획을 세워 두 신문을 폐간으로 몰고 갔음을 그 자료는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
식민지 치하에서 발행된 지면에서 오욕의 흔적, 부끄러운 내용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반면 항일적인 기사도 많았다. 행정처분과 사법처분의 빈틈없는 그물이 드리워져 있었고, 신문이 발행되기 전의 사전통제와 아울러 인쇄된 신문을 검열해 기사를 삭제하거나 신문을 압수, 발행정지(정간)시키는 단계별 탄압의 올가미가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동아와 조선이 20년 동안 당한 삭제처분은 거론할 것도 없거니와 인쇄된 신문이 압수와 발매금지 처분을 당한 건수도 두 신문이 각각 437차례와 471차례였다. 거기에 네 차례의 정간이라는 치명적 상처를 안은 채 폐간을 강요당한 것이다. 조선중앙일보의 일장기 말소와 관련한 폐간도 KBS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해석을 내렸다. 실제로는 장기간에 걸친 정간에 따른 재정난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 ‘민족언론 해부’ 의도-공정성 의문 ▼
83년의 역사 가운데 특정시기를 확대 비판하고 의도성이 엿보이는 해석을 곁들인 프로그램으로 두 신문의 공과(功過)를 올바르게 평가했다고는 볼 수 없으며, 시청자들에게 역사를 공정하게 알리지도 못했다. 동아와 조선의 지면을 비판하던 일제강점기의 방송은 어땠는가. 일제강점기의 시설과 인력, 그 유산을 이어받은 방송이 KBS라는 사실과 권력의 시녀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던 굴절된 과거도 돌이켜보기 바란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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