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충식총재의 구차한 출국

  • 입력 2000년 11월 30일 18시 51분


제2차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을 하루 앞둔 29일 돌연 일본으로 출국한 장충식(張忠植)대한적십자사총재의 모습을 보는 우리의 심정은 한마디로 착잡하다. 이산가족상봉행사를 주관해야 할 적십자사총재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처럼 구차한 모습으로 서둘러 자리를 비워야 했는가.

본란은 북측이 장총재의 ‘월간조선’ 인터뷰 내용 가운데 일부를 문제삼아 시비를 건 것은 정당치 못하며, 또 유감서한을 북측에 보내놓고도 국회에서 “그런 일이 없다”며 숨긴 장총재 본인이나 관계당국의 태도 역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남북한이 정말 인도적 차원에서 이산가족상봉을 추진하고 있다면 그런 논란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럼에도 북측은 ‘장총재가 이산가족 상봉단 전면에 나설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식의 강경 자세를 굽히지 않았고 급기야는 장총재가 이산가족을 위한 만찬을 주최한다면 자기들은 불참하겠다는 뜻까지 전했다고 한다. 북측의 이같은 ‘통보’에 버틸 수 없어 결국 장총재가 갑작스럽게 출국한 모양이다.

장총재의 출국에 대해서는 이산가족상봉이라는 ‘민족적 사업’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한적(韓赤)측은 장총재가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잘 치르기 위해서는 본인이 국내에 없는 게 도움이 되겠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을 주관하는 한적의 총재가 오히려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걸림돌이 되어 외국에 쫓기듯 나가 있어야 한다면 차라리 총재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게 본인의 명예를 위해서도 옳은 선택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원적이고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북한에 대한 자세다. 장총재의 지난번 유감서한 전달이나 이번 출국에 대해서는 정부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일’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사실이 그렇다면 정부는 우리의 체통이나 자존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북한의 눈치만 보며 하자는 대로 따라간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거듭 강조하지만 정부는 아무리 북한과의 관계가 어렵고 미묘하다 해도 할말은 제대로 해야 한다. 설명할 것은 설명하고 설득할 것은 설득하면서 최소한 지켜야 할 체통은 지켜야 한다. 그래야 남북한관계도 제대로 진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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