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김윤식교수 "가진 것이 언어밖에 없어 썼을 뿐"

  • 입력 2000년 8월 29일 18시 56분


27년만에 100권의 저작 돌파. 아무리 외곬수 학자라지만 쉽지 않은 업적이다. 필력을 증명한 이는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교수(64). 이달초 ‘한국현대문학비평사론’(서대출판부)로 순수 저술 100권을 채우더니 지난주에는 월간 ‘문학사상’ 실린 월평을 묶은 ‘초록빛 거짓말, 우리 소설의 정체’(문학사상사)를 내놨다.

◇많이 읽는 것이 유일한 장점

지난주 서울대 인문관 김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너댓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서니 곰삭은 책 냄새가 먼저 손님을 맞았다. 계간지 가을호를 읽던 그는 “축하드립니다”는 기자의 말에 생전 처음 선생님께 칭찬을 들어보는 소년 마냥 계면쩍어했다.

김교수는 “작가들이 고생해서 쓴 글을 실례가 안될 정도로 풀이해 놓았을 뿐, 무슨 거창한 사상이 든 것도 아니다”는 겸사로 운을 뗐다. “많이 읽는 것이 내 유일한 장점”이고 “가진 것이 언어밖에 없어 썼을 뿐”이라고.

그는 다독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대인관계에 재능이 없는 탓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으니 책을 많이 읽을 수 밖에요”.

그는 요즘도 새벽 3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독서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어느 에꼴에도 끼지않고 평단의 ‘재야’를 지킨 것도 무슨 소신 때문이 아니라 이런 성격 때문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 많은 소설을 읽느냐”는 우문에는 “오직 내 자신을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작가가 나보다 똑똑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방황할 때 그네들의 작품속에서 내 갈길을 찾는다 말이오. 그러므로 문학작품은 내 인생에 등불 같은 스승이지요”

그 ‘스승’에 대한 애정은 최근 문학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데서도 엿볼 수 있었다. “90년대 문학의 기본틀은 사회적 역사적 상상력을 벗어나 생물적인 상상력으로 옮겨간 것이지요. ‘나’라는 동물적 개체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거든요”.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시작으로 우리문학은 세계문학과 연결됐다는데, 과문한 탓인지 기자는 쉬 납득하기 어려웠다.

◇비평가는 작가에 빚진 사람

또 그에겐 비평의 임무도 인생의 ‘스승’인 작가를 극진히 보살피는 제자의 수발과 다름없어 보였다. “비평가란 작가에게 부채를 진 사람”이라거나 “비평은 작품을 칭찬하는 정교한 기술”이라고 선선히 말할 정도였다.

젊은 작가들에게 충고 한마디를 부탁했더니 “그런 것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도 짐작할 만했다.

평생 써본 감투라고는 순번제로 맡는 국문과 학과장이 유일하다 할 정도로 30년 가까이 문학비평의 외길을 걸어온 김교수는 내년 8월이면 이 연구실을 떠난다. 정년 이후 계획이 있나고 물었더니 대답이 생뚱맞다. “읽고 또 써야죠.”

마지막으로 김교수는 이 말만은 꼭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팔리지도 않을 책을 무슨 의의가 있겠거니 착각해서 내준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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