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추기경, 유학자 김창숙선생 묘소에 '禮' 올린다

  • 입력 2000년 5월 22일 19시 53분


천주교와 유교의 뜻깊은 만남이 이뤄진다.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이 23일 제13회 심산상 수상에 이어 24일 현대 유림의 큰 어른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선생의 묘소를 찾아 예(禮)를 갖추기로 한 것.

심산상 수상을 알리는 고유제(告由祭)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서 김추기경은 제주(祭主)인 김시업심산사상연구회장에 이어 묘소에 분향하고 술을 올린 후 ‘예’를 올리게 된다.

성균관대측은 김추기경에게 심산상 수락 의사가 있는지를 타진하면서 시상식 직후 고유제 행사가 관례임을 밝히자 추기경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추기경의 비서인 김 유스티나 수녀는 이에 대해 “천주교 제례방식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추기경은 22일 성균관에 보내온 수상 연설문을 통해 “저는 천주교 성직자이지만 한국인이기에 제 몸 안에도 어딘가 유교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18세기 말엽 이승훈 정약용 등 신진 유학자들이 유교사상과 천주교를 조화시키려 한 보유론(補儒論)은 세계 천주교회사에 유례가 없는 진취적인 자세”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1939년에 가서야 철회된 천주교회의 일방적인 제사 금령을 ‘조선 국민의 모든 계층이 눈동자를 찌른 것’이라는 달레(C. Dallet)의 표현을 인용해 유감을 표시했다.

김추기경은 “조상 제사는 미신이 아니라 부모 사후에도 계속 효를 실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며 “유교가 부모에 대한 효를 통해 천(天)에 대해 대효(大孝)로 올라가는 상향식이라면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대효를 바탕으로 부모께 효를 하려는 하향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추기경은 또 “유교의 인(仁)사상,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사상, 그리스도교의 사랑정신으로 생명의 문화를 회복하자”고 역설했다.

심산상은 성균관대 설립자로 항일 독립투쟁과 반독재 통일운동에 앞장선 김창숙 선생(1879∼1962)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해 86년에 제정된 상이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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