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쿠데타와 문민통제

  • 입력 2000년 5월 15일 19시 48분


5월16일 아침 생각나는 것은 우리 정치사에 오랫동안 멍에와도 같이 얹혀져 있던 군의 정치개입이다. 5·16쿠데타 이후 군 출신 정치인들의 활갯짓이 삼십 수년간 이어졌다. 그렇다 해서 묵묵히 일해 온 다수 직업군인들까지 싸잡아서 타기시할 일은 결코 아니다. 소수 정치군인들이 문제였다. 그 정치군인들이 군 집단을 나쁘게 이용해서 순수한 직업군인들까지 욕되게 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세운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은 5·16 이후에도 18년의 집권기간 중 평균 4년에 한번씩은 계엄령과 위수령을 발동했다. 1964년 대일(對日)굴욕외교 반대시위에 대한 6·3 계엄령, 71년 대학교련 반대운동에 대한 10·15 위수령, 72년 10·17 유신쿠데타, 그리고 79년 10월 부산 마산 시민항쟁에 대한 계엄령이 그것이다. 이 부마 계엄령아래서 그는 10·26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80년 5·17내란 이후 그가 키워놓은 신군부에 의한 제2기 군정이 이어졌다.

▷군대식 권위주의 정권은 다수 민의보다도 소수 집권자의 의사에 따르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극단적이기 쉽다. 시민혁명으로 절대군주제가 사라진 18세기 말 전쟁이 없어지리라고 생각한 것도 탈권위주의에 대한 기대에서였다. 칸트는 ‘다수 국민의사로 정책을 결정하는 공화제 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공화제 국가들도 제대로 민주주의를 시행하지 않으면 전쟁을 도발하곤 했다. 변질된 공화제인 나치즘이나 파시즘이 세계2차대전의 주범이었던 것이 그런 예이다.

▷정치학자들은 민주주의의 구체적 지표 중 하나로 정부의 탈군사화를 든다.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도 같은 맥락이다. 김영삼(金泳三)정부는 자신들의 가장 큰 치적으로 정치군인 숙정에 의해 문민통제의 주춧돌을 세웠다는 점을 든다. 중국도 장쩌민(江澤民) 같은 지도자가 민간출신이지만 군부를 잘 통제하고 있다. 다른 동북아 국가들의 군에 대한 문민통제 여부도 이 지역 안보에 중요한 변수라는 점에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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