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무책임한 대선연기론

  • 입력 1997년 9월 5일 20시 07분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의 발언은 황당하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12월 대통령선거 이전에 내각제 개헌을 결심하면 대선 연기가 가능하며 그 경우 정계개편에 협조하겠다는 그의 말은 얼른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측이 김총재의 이런 손짓을 일축했으니 망정이지 도대체 공당(公堂)의 대선후보가 나라의 정치질서나 일정을 제멋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한심스러운 일이다. 김총재의 내각제 집념을 모르는 바 아니다. 대선에 출마하는 것도 내각제 개헌을 하기 위해서라는 그의 주장은 논리적 모순이 많지만 나름대로 절차를 지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해 왔다. 그런데 대선을 불과 1백일 앞둔 지금 그는 느닷없이 개헌과 인위적 정계개편 대선연기 등 세가지를 한묶음으로 내놓았다. 그중 한가지만 한다 해도 정치권이 진동하고 음모니 야합이니 나라가 온통 시끄러울 게 분명한데 불쑥 이런 말을 꺼낸 의도가 수상하다. 지금은 9월 대란설 등으로 가뜩이나 정치권이 어지러운 때다. 여당에서 불거진 후보교체론과 여야를 넘나드는 보수대연합이나 정계개편설이 무성해 국민은 불안하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정치쪽을 지켜보고 있다. 조금이라도 책임있는 정치인이라면 이런 때 분명한 소신과 입장을 밝히고 흔들림 없이 정치일정을 준수하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다. 그러기는커녕 정략 냄새가 물씬 나는 말을 서슴지 않으니 정국혼미만 가중될 뿐이다. 여권이 거부는 했지만 물밑에서 뭔가 교감이 있었기에 김총재가 운을 뗀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벌써부터 일고 있다. 여론조사마다 최하위권을 맴돌고 야권 후보단일화 협상에서도 열세에 몰린 김총재가 반전을 노려 승부수를 띄웠다는 관측도 있다. 어느 경우든 정치신의 없이 자신의 유불리(有不利)만 생각한 발언이란 지적을 면키 어렵다. 가닥잡기 힘든 언행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정치는 더이상 안된다. 김총재는 자중자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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