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폭력시위를 진압하던 전경이 또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8월 연세대사태 때 의경 한명이 학생들이 던진 벽돌에 맞아 숨진 지 9개월만에 또 한명의 젊은이가 희생된 것이다. 제대하고 편히 모실테니 안심하라고 시골 부모께 일주일에 서너번씩 문안전화를 하던 젊은이였다고 한다. 지난해 연세대에서 희생된 의경 가족들은 학생들의 주장이 한 가정을 풍비박산시킬 정도로 위대한 것이냐고 물었다. 오늘 우리는 또 한명의 전경의 죽음 앞에서 그때 그 가족들의 절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금년 4월 「한총련 통일일꾼 전진대회」는 「민족자주의 기치 높이, 반전 평화체제구축의 돌격전에서 전민족적 연대의 공동투쟁으로 미(국)―김(영삼)일당의 전쟁책동을 저지 파탄내고 90년대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고 결의했다. 마치 북한의 대남방송을 듣는 느낌이다. 한총련은 이를 위한 계단식 연속총궐기를 내걸고 지난달 30일 5기 출범식을 시작으로 하는 3단계 투쟁전략을 세웠다. 지금의 한총련 폭력시위는 이를 원천 봉쇄하려는 공권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정면 도전인 것이다.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열차를 강제로 정차시키고 도심을 점거해 교통을 마비시키고 서울 시내 각 대학에 분산 농성하며 수업을 방해하는 한총련 폭력시위는 이미 순수 학생운동의 영역을 일탈하고 있다. 이 폭력노선은 대학사회에서 점차 고립되면서 그 반작용으로 더욱 극렬해지고 있다. 그 극렬투쟁의 와중에서 한 사람의 전경이 희생당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전경도 우리 자식이고 학생들도 우리 자식이다. 그러나 한총련 학생들의 세계를 보는 눈은 너무나 맹목적이서 안타깝다.
현실은 한총련이 지도이념으로 수용하는 주체사상으로는 절대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더구나 어떤 경우에도 폭력시위로는 대중에 한발짝도 다가갈 수 없다. 더 이상 대학생이라는 신분에 숨어 시위의 순수성을 가장할 수도 없다. 그만큼 한총련의 정체와 투쟁전략은 세상에 다 드러나 있다. 도대체 지구상의 어느 나라가 체제에 도전하는 폭력시위를 용납하겠는가. 한총련은 이 점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정부당국에도 사태가 여기에 이르도록 무엇을 했는지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2일까지 한총련 도심시위에서 경찰 1백76명이 다쳤고 학생측에서도 학생 한명이 돌멩이에 머리를 맞고 뇌수술을 받는 등 많은 부상자를 냈다. 그렇다면 이미 예고된 출범식 하나 막지 못하고 그 많은 희생을 내기까지 공권력은 손을 놓고 있었다는 말인가. 꽃다운 젊음들이 무익한 적대감으로 더 이상 희생당하게 해서는 안된다. 당국은 당장 보다 근본적인 폭력시위 대책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