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차기 대통령의 자격

  • 입력 1997년 1월 10일 20시 24분


미국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하다.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 외교수장 최고사령관 최고입법자 정당지도자인 동시에 만능의 설교자다. 그 막강한 권한과 역할에도 불구하고 트루먼 전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설득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었다. 국민에게 호소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는 것이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이라는 뜻이다. 법 규정이야 어찌 됐건 우리나라 대통령의 권한은 미국 대통령의 권한을 뛰어넘는다. 삼권분립이라고 하지만 입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도 대통령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흔히 말하듯 선거로 뽑은 군주(君主)와도 같은 권한을 행사한다. 대통령이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배하는 사람인 셈이다. 문민정부라는 金泳三(김영삼)정부에서도 이 권위주의시대의 관행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 「힘」아닌 「설득」의 지도자 ▼ 지난 7일의 대통령 연두회견에서도 확인됐다. 김대통령은 시종일관 자신이 「힘의 보유자」임을 과시했다. 그러나 지도자는 힘을 즐기기 전에 국민의 소망과 열정을 시대적 요구와 목표에 맞춰 조화롭게 묶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이는 데 실패했고 사람들은 대통령의 그 무감각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김대통령은 문민정부 4년이 이룬 것은 민주 정의 번영이었으며 사회 각 분야에는 자율과 창의가 넘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한 야당 대변인은 문민정부가 이룬 것은 민주 아닌 국회유린, 정의 아닌 측근비리, 번영 아닌 외채와 경상수지 적자였다고 논평했다. 근사(近似)했다. 지금 사회 각 분야에 넘치고 있는 것은 좌절과 갈등이다. 대통령이 이것을 모르고 있다면 현실인식과 판단력에 중대한 허점이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현안의 경제침체를 국가경쟁력 상실에 의한 구조적 위기가 아니라 경기순환적 불황이라고 진단하고 지난 연말 국회 날치기에 대해서 한마디 유감의 말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노동자 대파업에 대해서도 고뇌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고통은 국민에게 떠넘기고 야당총재와의 대화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난국에 빠진 국가를 경영해 나갈 미래지향적 통찰과 효과적인 전략 제시도 빈약했다. 설득 아닌 강요, 합의 아닌 대결의식에 원론의 나열이 주조를 이뤘다. ▼ 「혀」아끼고 두뇌를 써야 ▼ 딱한 것은 회견 도중 곳곳에서 지뢰처럼 터져나온 「실언」들이었다. 하지 말았어야 할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이다. 지도자는 혀를 덜 쓰고 두뇌를 더 쓰는 것을 법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 닉슨 전미국대통령의 충고가 생각났다. 대통령은 국가를 상징한다. 대통령의 실언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국가에 대한 신뢰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실언만이 아니다. 대통령의 언어와 문법은 권위있는 정치교사로서 대통령의 지적 능력을 판단하는 하나의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불안한 어법과 발음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항이다. 미국의 한 커뮤니케이션 학자는 클린턴대통령의 연설에 자주 등장하는 남부지방 어투와 속어(俗語)가 대통령직의 권위를 크게 훼손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김대통령은 차기 여당 대통령후보의 기준으로 추진력 능력 도덕성을 들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김대통령의 연두회견은 차기 대통령의 자격을 반어적(反語的)으로 보여준 셈이 됐다. 국민은 올 12월 대통령 선거에서는 손가락을 어쩌겠다느니 하는 따위의 자책(自責)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각성해야 할 일이다. 김 종 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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