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권하는 중국 로봇, ‘쇼’인 줄 알았더니 ‘데이터 스펀지’였다?[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2월 21일 10시 00분


중국 상하이 기반의 로봇 기술 전문 기업 애지봇(AGIBOT, 智元)이 자사의 차세대 풀사이즈 휴머노이드 로봇 ‘익스페디션(Expedition) A3’. 자료 애지봇 X
중국 상하이 기반의 로봇 기술 전문 기업 애지봇(AGIBOT, 智元)이 자사의 차세대 풀사이즈 휴머노이드 로봇 ‘익스페디션(Expedition) A3’. 자료 애지봇 X
중국 상하이 기반의 로봇 기술 전문 기업 애지봇(AGIBOT, 智元)이 자사의 차세대 풀사이즈 휴머노이드 로봇 ‘익스페디션(Expedition) A3’. 자료 애지봇 X
중국 상하이 기반의 로봇 기술 전문 기업 애지봇(AGIBOT, 智元)이 자사의 차세대 풀사이즈 휴머노이드 로봇 ‘익스페디션(Expedition) A3’. 자료 애지봇 X
한 발로 연속 공중제비를 돌고, 물구나무선 채 7바퀴 반을 회전합니다. 쌍절곤을 능수능란하게 휘두르고 취권도 그럴듯하게 선보이죠. 2월 16일 중국 CCTV가 방송한 ‘춘절 갈라쇼’의 하이라이트는 올해도 휴머노이드 로봇들의 군무였는데요.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상을 두고 전 세계에서 놀랍다, 무섭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도 제기되죠. ‘그래서 이걸로 뭘 할 건데?’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을 들여다보겠습니다.

2월 19일 중국 베이징의 한 축제 현장에서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춤을 추고 있다. AP 뉴시스
2월 19일 중국 베이징의 한 축제 현장에서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춤을 추고 있다. AP 뉴시스

*이 기사는 2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휴머노이드 로봇 톱4는 중국
두 발로 걷고 두 손으로 물건을 집는, 인간처럼 생긴 로봇.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이 이제 실험실을 벗어나 현장에 발을 딛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 설치 대수는 1만6000대(카운터포인트리서치 기준). 전년보다 5배 이상 늘었죠. 2025년을 기점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의 대량생산 시대가 열린 건데요.

아직 새싹 단계인 이 산업의 선두 주자는 누구일까요. 연간 설치 대수를 기준으로 할 때 1위 애지봇(AGIBOT)과 2위 유니트리(Unitree)가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이어 유비테크(UBTECH), 러쥐(Leju), 테슬라 순이죠.
카운터포인트리서치가 집계한 2025년 휴머노이드로봇 설치 대수 점유율. 애지봇이 31.9%로 1위, 유니트리가 26.5%로 2위다. 이어 유비테크, 러쥐, 테슬라가 5% 안팎 점유율로 3~5위를 기록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가 집계한 2025년 휴머노이드로봇 설치 대수 점유율. 애지봇이 31.9%로 1위, 유니트리가 26.5%로 2위다. 이어 유비테크, 러쥐, 테슬라가 5% 안팎 점유율로 3~5위를 기록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톱5 로봇 기업 중 테슬라를 제외한 상위 4곳은 모두 중국 기업입니다. 지난해 전 세계에 설치된 로봇 5대 중 4대가 중국산일 정도로, 중국이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을 휩쓸고 있죠. 그리고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겁니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2배 이상인 2만8000대로 늘어날 거라 전망했죠. 아울러 2030년 26만2000대, 2035년 260만대의 기하급수적 성장세를 보일 거란 예측을 함께 내놨습니다.

물론 너무 낙관적인 거 아닌가 싶긴 하지만, 그만큼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가능성을 보여줬단 뜻이겠죠. 그럼 중국에서 이 시장을 이끄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춤추는 로봇을 빌려줍니다
특별한 결혼식을 원하세요? 휴머노이드 로봇이 걸어 나와 신랑 신부에게 반지를 전달해 주면 어떨까요. 가게 개업식을 연다고요? 춤추는 풍선 인형 대신 춤추는 로봇이 시선을 끌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 중국에선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생일파티, 명절 모임, 기업행사, 전시회,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을 불러 쇼를 펼치곤 하죠. 휴머노이드 로봇의 대량생산 시대와 함께 ‘로봇 렌탈’이란 신종 사업이 탄생한 겁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아무리 보급형이라고 해도 한 대에 천만원이 훌쩍 넘거든요. 선뜻 구입하기엔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게 로봇을 몇시간, 또는 며칠 대여해주는 서비스 사업인 거죠. 마치 렌터카처럼 말이에요. 소프트웨어 시장의 SaaS(Software-as-a-Service)에 비견해, 로봇 렌탈 사업을 가리키는 RaaS(Robotics-as-a-Service)라는 용어까지 생겨났죠.

‘로봇판 에어비앤비 내지 우버’를 표방하는 로봇 렌탈 플랫폼 칭톈렌탈(영문명 봇셰어). 출시 3주 만에 등록 사용자 수 20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칭톈렌탈 제공
‘로봇판 에어비앤비 내지 우버’를 표방하는 로봇 렌탈 플랫폼 칭톈렌탈(영문명 봇셰어). 출시 3주 만에 등록 사용자 수 20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칭톈렌탈 제공

이런 로봇 대여 사업, 중국에선 상당히 활황입니다. 소비자는 수천만 원짜리 로봇을 하루 수십~수백만 원에 빌려 체험할 수 있으니 좋고, 업체는 잘하면 몇 달 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으니 남는 장사이죠. 일단 이렇게 돈이 된다고 알려지자, 수많은 중소사업자가 생겨났고요. 최근엔 유명 기업까지 이 시장에 본격 진출했습니다. 애지봇과 즈푸AI(Zhipu AI)가 지난해 12월 공동 설립한 세계 최초 로봇 렌탈 플랫폼 ‘칭톈렌탈(영문명 Botshare)’이 대표적이죠. 소비자와 로봇 렌탈 업체를 연결시켜주는 서비스로, ‘로봇판 우버’를 추구합니다.

칭톈렌탈을 통하면 애지봇의 최고급형 휴머노이드 로봇 ‘위안정 A2’(판매가 약 4200만원)를 하루 210만원(9999위안), 유니트리의 인기 보급형 로봇 G1(판매가 약 2100만원)을 하루 105만원(4999위안)에 빌릴 수 있습니다. 최근엔 명절 연휴를 앞두고 ‘999위안(21만원) 로봇 체험 프로그램’도 선보였어요. 999위안을 내면 엔지니어가 로봇을 데려와 맞춤 공연을 펼쳐준다는군요. 칭톈렌탈 공식 발표에 따르면 출시 초기 기준 하루 200대 이상이 대여될 정도로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그 정도 가격이면 이용할 만해 보이나요? 아니면 궁금하니까 한번은 빌려봐도, 두 번은 안 할 것 같다 싶으신가요?

중국 애지봇의 휴머노이드 로봇과 로봇견. 애지봇은 지난해 설치 대수 기준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애지봇 제공
중국 애지봇의 휴머노이드 로봇과 로봇견. 애지봇은 지난해 설치 대수 기준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애지봇 제공

중국 내에서도 로봇 렌탈 사업에 대한 회의론은 나옵니다. 결국 신기함을 파는 사업일 뿐이고, 그 인기가 오래 가지 않을 수 있다고 보는 건데요.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쇼’가 있기에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파티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죠.

생각해 보세요. 고급형 로봇은 웬만한 자동차 한 대 값이잖아요. 비싸서 안 팔리니까 대량 생산이 어렵고, 많이 만들지 않으니까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죠. 그 결과 로봇 스타트업은 초기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한 채 망하기 십상입니다. 이른바 ‘죽음의 계곡’에 떨어지는 거죠.

그런데 중국에선 로봇 렌탈 산업의 성황 덕분에 비싼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척척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로봇 제조사는 아직 초기인데도 현금흐름을 창출하며 로봇 생산과 개발을 이어갈 수 있고요. 점점 더 많은 물량을 생산하면서 주요 부품 단가를 떨어뜨릴 수 있게 됐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로봇이 학습을 통해 점점 똑똑해질 수 있단 점인데요. 이제 휴머노이드 로봇은 연구실이 아닌 결혼식장, 식당, 쇼핑몰, 공장, 가정 등 실제 현장을 경험하고 있고요. 이를 통해 수집한 시각·촉각·행동 데이터가 로봇의 AI 학습에 활용됩니다. 춤추는 렌탈 로봇이 조금 우습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들은 현장 데이터를 빨아들이며 AI 모델을 진화시키는 중입니다.

진짜 소비자 시장 열리려면
기술적으로 어설픈데도 제품을 사주는 고객이 있기에, 스타트업은 성장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로봇청소기나 전기차 같은 중국 기술 제조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한 건 거대한 내수시장이 일종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죠. 이제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도 그 길에 막 들어섰는데요.

그럼 궁금합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언제쯤 진짜 삶의 일부로 들어오게 될까요.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서 진짜 ‘1가구 1로봇’ 시대로 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일단 굳건했던 가격 장벽은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노에틱스는 지난해 ‘부미(Bumi)’라는 9998위안(210만원)짜리 아담한 체구의 가정용 로봇을 출시했어요. 휴머노이드 로봇 가격이 아이폰 한 대 수준으로 떨어진 거죠. 휴머노이드 로봇은 감속기(로봇 관절의 인대 역할)와 서보모터(로봇의 근육 역할) 같은 핵심부품이 생산비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요. 일본이 장악했던 이런 부품을 중국도 직접 생산하게 되면서 가격을 확 낮출 수 있게 됐습니다.

중국 기업 노에틱스가 9998위안에 판매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부미’. 노에틱스 제공
중국 기업 노에틱스가 9998위안에 판매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부미’. 노에틱스 제공

문제는 부품의 신뢰성이죠. 가정에서 냉장고나 세탁기 사듯이 로봇 한 대를 들이려면 ‘최소 5~10년은 큰 고장 없이 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요. 산업현장에서 이미 충분히 검증된 일본·유럽산 부품과 달리, 값싼 중국산 액추에이터(감속기+서보모터)의 내구성은 아직 확인할 만한 장기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만약 중국산 휴머노이드 로봇을 사서 10년 동안 매일 사용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현재로선 ‘잘 모르겠다’가 답일 거예요. 시간이 더 필요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소비자 눈높이를 충족할 만한 성능까진 갈 길이 매우 멉니다. 소비자가 진짜 바라는 건 만능 로봇이죠. 빨래, 청소, 물건 나르기, 요리까지 척척 다 해주는. 하지만 규격화되지 않은 물체를 다뤄야 하는 집안일은 로봇에겐 너무나 어렵습니다. 구겨진 빨래를 보고 뒤집힌 소매를 바로잡는 것, 두부와 당근의 단단함 차이를 인지하고 칼질하는 건 현재 AI 지능엔 너무 어려운 과제니까요. 휴머노이드 로봇이 이를 익히기 위해선 현실 세계와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물리적 감각에 대한 학습을 엄청나게 추가해야 한다는 뜻이죠. 몸을 통해 배우는 ‘체화된(Embodied) AI’ 가 필요한데요.

체화된 AI 모델 전문가인 왕중위안 베이징 즈위안 AI연구원(BAAI) 원장은 기술 발전이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며 이렇게 경고합니다. “저는 여러 자리에서 강조하고 호소해 왔어요. 체화된 AI는 5~10년의 주기, 심지어 더 긴 시간이 필요한 분야예요. 우린 더 많은 인내심과 관용이 필요하죠. 역사적 법칙에 따르면 거품이 너무 빨리 생기고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앞으로 2년 내엔 이 분야(휴머노이드 로봇)가 침체기에 빠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스마트폰 가격에 세탁기만큼 튼튼하고 사람 손처럼 섬세한, 그런 휴머노이드 로봇이 우리 집에 찾아올 날. 왕 원장 말대로 10년은 더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이미 시작된 이 장거리 레이스에서 한국 로봇 업계가 인내심과 집중력을 발휘해 역전극을 펼칠 수 있기를 응원해 봅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2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휴머노이드 로봇#중국 로봇 산업#로봇 렌탈#애지봇#유니트리#AI 학습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