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홍보 문구가 ‘그래도 살 만한 인생’이었지만 저희가 하려던 얘기는 반대였습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김원석 PD)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엠큐브에서 만난 tvN 드라마 ‘미생’의 정윤정 작가는 무릎 위에 백과사전 두께의 A4용지 세 묶음을 올려놓았다. 미생을 쓰며 취재한 내용을 정리한 자료라고 했다. 김원석 PD는 “오늘 오전 6시 마지막 장면의 촬영을 마쳤다”면서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미생은 20일 오후 20회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기획부터 시작해 1년 2개월 동안 미생에 매달렸다. 엠넷 뮤직드라마 ‘몬스타’(2013년)에서 호흡을 맞춘 뒤 두 번째 작업이다. 김 PD는 “정 작가는 페이소스가 있는 코미디를 가장 잘 쓰는 작가”라며 “원작은 지적이고 철학적이지만 드라마는 코미디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미생을 드라마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할 거라는 얘기가 많았지만 ‘창작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덤볐다”며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뒤로는 장그래가 돼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유명 원작을 드라마로 만드는 부담은 컸다. 어떤 드라마를 만들지 얘기하는 데 첫 한 달을 보냈고 한 달 반 이상 자료 조사에 매달렸다. 1회 대본이 나오기까지는 두 달이 걸렸다. 김 PD는 “1회 마지막 대사는 장그래가 울분을 간직한 채 독백하는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아 버려졌다’로 미리 정했다. 그런데 그 대사로 가기 위한 오징어젓갈 에피소드가 나오는 데 두 달이 걸렸다”고 했다.
미생은 선과 악이 “49 대 51”(정 작가)로 섞인 평범한 인물들이 격렬한 감정 기복 없이 드라마를 끌어간다. 정 작가는 “원래 남녀 멜로에 약하다. 키스신이 제일 힘들다. 그 대신 전략적으로 ‘브로맨스’(남자 간의 우정)를 많이 넣었다”고 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회사생활에서 느끼는 불안이 있잖아요. 요즘 젊은 세대들 역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외로움이 있고요. 늘 혼자였던 장그래가 ‘우리 애’가 되는 과정을 통해 누구나 공감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어요.”(김 PD)
“40대 남자 직장인이 술 마시고 택시 잡다가 넘어지는 모습, 큰 양복 안에 들어 있는 초라한 몸, 그럼에도 식판에 밥을 먹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바탕으로 대본을 썼어요. 사람들이 미생을 보며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연민을 느끼며 위로받았다고 생각합니다.”(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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