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난치병]<4부>아이들에게 희망을…①희지양의 투병기

  • 입력 2004년 11월 28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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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지양(9)이 배꼽 아래에서 멍을 발견한 것은 2월이었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였다.

희지양은 멍이 생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넘어지거나 부딪친 기억은 없었다. 눌러도 아프지 않았다. 어머니 박현욱씨(35)는 불길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얼마 후 희지양의 왼쪽 팔에 또 멍이 생겼다. 이번에는 500원짜리 동전의 3배 크기였다. 동네 소아과를 찾았다.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진단이 떨어졌다. 급성림프구성 백혈병. 평소 감기도 잘 안 걸리던 아이였는데….

4월부터 부산 동아대병원에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15일 부산 동아대병원 무균실. 최희지양(왼쪽)은 제대혈을 이식받은 후 거의 완치 상태였지만 혹시 모를 감염 때문에 무균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희지양과 어머니 박현욱씨가 수술 결과를 말하며 활짝 웃고 있다. -부산=김상훈기자

먼저 약물을 짧은 기간 강하게 써 암세포를 100억개 이내로 줄이는 시도를 했다. 후속치료를 위해 꼭 거치는 이 과정에서 환자의 80∼90%는 암세포가 줄어든다. 그런데 희지양은 그대로였다. 암세포가 약에 내성을 가진 것이었다.

치료 과정은 더뎠다. 아이의 고통을 지켜보는 부모가 더 괴로웠다. 박씨는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전했다.

“병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죠. 왜 하필 우리냐. 남에게 피해를 입힌 적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을 원망했어요. 남편과 싸우는 횟수도 늘어났고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된 기분이었죠. 한마디로 절망이었습니다.”

박씨는 그래도 흔들리지 않았다. 민간요법이며 암에 좋다는 비방(秘方)을 모두 물리쳤다. 철저하게 의학적으로 검증된 정보만 받아들였다.

제대혈 이식이 최선임을 확신한 것은 9월경이었다. 제대혈은 태반과 탯줄에 있는 혈액으로 골수처럼 피를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들어 있다. 희지양과 항원구조가 일치하는 제대혈을 구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10월 26일 혈액주사로 제대혈을 이식했다. 대성공이었다. 성공의 1차 기준은 이식된 ‘혈액공장(조혈모세포)’이 정상적으로 피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 이를 ‘생착’이라 한다.

희지양의 μL당 백혈구 수치는 이식 4일 후 900개, 8일 후 20개로 줄었다. 9일 후 마침내 새 혈액공장이 가동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백혈구가 늘었고 15일 후에는 5000여개에 이르러 정상인 수치(4000∼1만개)와 같았다.

이식 17일째. 마침내 ‘완전생착’이 이뤄졌다. 희지양의 혈액형도 A형에서 이식된 제대혈을 따라 O형으로 바뀌었다. 보통 제대혈 이식 후 생착까지는 3∼4주가 걸린다. 희지양은 회복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것.

성공의 2차 기준은 이식된 조혈모세포가 기존의 세포를 공격하지 않아야 한다. 간혹 이런 공격이 나타날 경우 면역거부에 따른 치명적 세균감염이 생긴다. 희지양에게 이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희지양은 11월 16일 일반병실로 옮겼으며 이번 주에 퇴원할 예정. 앞으로도 별다른 항암치료는 없다. 정기적으로 검사만 받으면 된다.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 의사는 “의학적 기준에 따르면 5년간 재발하지 않았을 때 완치라고 판정한다”면서도 “그러나 이대로라면 희지는 완치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희지양은 내년 2학기에는 학교에도 간다. 그보다는 당장 그렇게 하고 싶었던 컴퓨터게임을 맘껏 할 수 있게 됐다. 소감을 물었지만 희지양은 수줍게 미소만 지었다. 옆에 있던 박씨가 대신 말을 이었다.

“만약 제대혈을 구하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아득해집니다. 이름도 모르는 제대혈 기증자가 고맙고, 또 고마울 뿐입니다.”

부산=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다음 주제는 ‘제대혈 기증합시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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