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마음의 거울… “자꾸 닦으면 맑아져요”

  • 입력 2009년 4월 13일 02시 56분


어린이는 말로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부모와 치료사는 그림을 통해 어린이 마음을 읽고 소통함으로써 마음의 병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사진 제공 차병원 미술치료클리닉
어린이는 말로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부모와 치료사는 그림을 통해 어린이 마음을 읽고 소통함으로써 마음의 병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사진 제공 차병원 미술치료클리닉
《호연이(가명·11)는 치료실로 들어서자마자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외래진료실 공사해요? 왜 공사해요? 1층 공사 다 하면 어떻게 돼요?” 질문이 너무 빠르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다. 치료사가 “호연이는 왜 그렇게 병원에 관심이 많아. 그만하고 오늘은 크레파스로 그려보자” 하고 말을 끊어보지만 소용없다. “여기 6시에 문 닫아요? 원래 6시에 문 닫아요? 처음 만들 때도 6시에 문 닫았어요? 토요일은 몇 시에 문 닫아요?” 최근 기자가 차병원 대체의학센터 임상미술치료클리닉을 찾았을 때 만난 호연이는 가벼운 자폐증을 앓고 있다. 흔히 자폐증 하면 내면세계에만 고립돼 외부와 전혀 교류가 없는 경우를 떠올리지만 증상은 다양하다. 무의미한 말을 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자폐증 어린이 집중력―심리안정 도와

자폐증 때문에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 없고 친구도 사귈 수 없었던 호연이는 1년 동안 미술 치료를 통해 집중력과 마음의 안정을 얻는 방법을 배웠다.

미술치료는 미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마음을 드러내는 심리치료법이다. 부모나 치료사는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알고 문제를 느끼도록 도와준다.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자폐증 등 아동기 심리장애뿐 아니라 우울증이나 치매처럼 성인이 흔히 겪는 심리장애에도 활용된다.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호연이는 그림을 통해 조금씩 숨겨진 마음을 보여주며 점차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그림 ①과 그림 ②는 처음 치료를 시작할 때 엘리베이터를 그린 것이다. 그림에 침을 뱉어 지저분하고 색깔도 우중충하다. 그림 ③은 상태가 호전된 후 그린 것으로 깨끗하고 색깔도 화사하다.

작은 창문→수줍음, 꺾인 가지→불안 상징

처음 아이의 마음을 읽어내려면 집, 나무, 사람 등 친숙한 소재를 한 폭의 그림 안에 그리는 검사를 실시한다.

집의 문이나 창문은 외부와의 소통을 의미한다. 크기가 너무 작거나 없다면 수줍음이 많거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나무뿌리는 가족으로부터 얻는 안정감을 의미한다.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부위인 나무줄기로부터 삶에 만족감이나 성취에 대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꺾인 가지는 불안한 심리상태를, 죽은 가지는 상실감과 공허함을 상징한다. 사람은 좀 더 적극적인 자아개념을 보여준다. 손과 팔은 외부와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부분이다. 손, 팔을 그리지 않거나 주머니에 넣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면 불안하고 위축돼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반대로 너무 크면 공격성이나 산만함을 의미한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난 후에는 “이 집엔 누가 살고 있을까?” “나무에 감정이 있다면 지금 나무의 기분은 어떨까?” “이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아이의 정서를 진단한다.

그릴 때 다그치거나 간섭하지 말아야

미술치료는 초기, 중기, 후기 등 3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초기는 그림을 통해 아이와 치료사(부모 포함)가 관계를 맺는 단계다. △프로타주(나뭇잎, 동전 등 물건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문지르기) △마음대로 끼적거리기(낙서)를 하도록 하면서 어떤 느낌인지,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를 묻는다. 중기는 아이가 속마음을 내보이는 단계다. △습식화(젖은 도화지에 물감 떨어뜨려 번지게 하기) △점토로 ‘나를 힘들게 한 못난이’ 만들기 △점토로 ‘내 얼굴’ 만들기를 한다. 후기는 자신과 환경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도록 돕는 단계다. △소망나무 만들기(나무를 그려놓고 종이에 소망을 적어 붙이기) △우리 가족 광고하기(잡지나 신문에서 사진을 오려붙이며 가족광고 만들기)를 한다.

이때 치료사는 “그게 뭐니?” “그걸 그린 이유가 있을 거 아냐?”라는 말로 아이를 다그쳐서는 안 된다. 김선현 포천중문의대 임상미술치료클리닉 교수는 “치료사와 부모는 아이가 작업하는 동안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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