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은의 이야기가 있는 요리]한낮의 일탈 '낮술'

  • 입력 2003년 1월 16일 17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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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교 기자
/신석교 기자
홀로 경주에 내려갔다. 새벽같이 석굴암에 올라 일출을 보고, 그 길로 불국사에 들러 108번의 절을 올리며 마음의 찌꺼기들을 다 비웠다. 경주 시내의 시장을 둘러보고 숙소로 향하던 시각은 벌써 정오를 넘었는데, 보문단지 내 호숫가를 걷자니 가슴이 벅차오르는 개운함에 절로 흥이 났다. 때마침 눈에 보이는 밥집. ‘해물 순두부’ ‘찹쌀 동동주’라는 눈에 띄는 두 메뉴에 드르륵 문을 밀고 들어선다. “순두부랑 동동주 주세요” 주문을 한다. “일행이 더 오시나요?” 아주머니가 물으신다. “저 혼자인데요, 왜요?” 순간 이웃한 테이블의 손님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오후 2시에 홀로 식당에 들어서 동동주를 시키는 젊은 여자. 주위의 눈들은 다시 각자의 밥상으로 돌아가고, 어느새 내 상에 나온 동동주는 배꽃에서 갓 짜낸 꿀처럼 달다.

‘일탈’이란 말 그대로 일상을 탈출하는 거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가끔씩 저질러보는 기분전환의 묘약이다. 거창한 탈선이 아닌 소소한 일탈은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오후 2시에 벅찬 가슴으로 마신 두 잔의 차가운 동동주 같은 것이다.

‘낮에 마시는 술’에는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함이 있다. ‘낮’이라는 시간대가 통상 열심히 일할 때이기 때문에 낮술에는 한량스러운 방탕함이 맴돈다. 또 아직 해가 너무 밝아서 낯빛이 적나라하게 보이기 때문에 유난히 취기가 드러나버린다. 그래서 “낮술에 더 취한다”고 술꾼들은 말한다. 애주가가 아니더라도 복잡한 머리, 긴장된 몸을 풀어줄 수있는 낮술상을 강, 중, 약의 세단계로 제안해 본다.

● 약(弱): 샴페인과 카나페

영화 ‘로마의 휴일’을 보면 거리로 도망나온 공주가 한낮의 노천카페에 앉아 샴페인을 홀짝거린다. 고급스럽게 따라지는 한 잔의 샴페인은 마시는 이를 공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술이다. 화려한 기포와 섬세한 향, 그리고 고가의 이름값이 ‘술’이라기보다는 ‘사치품’이라는 인상을 더 강하게 만들기 때문일까. 아무튼 빡빡한 일정 중에 마시는 샴페인 한 모금은 혀끝으로부터 정수리까지 퍼져올라 땡볕에 불어주는 바람 한 자락처럼 신선한 활력을 준다.

샴페인의 가격대가 부담스럽다면 보통의 스파클링 와인으로 대체해도 좋다. 맛과 향의 섬세함은 떨어지지만 기분은 그럴듯하게 살려볼 수 있다. 함께할 안주로는 간단한 카나페 정도. 훈제연어와 허브의 일종인 딜, 생크림을 갈아 만든 무스를 곱게 다진 피클과 섞어서 크래커에 바른다. 혹은 시럽에 조린 사과를 곶감과 함께 먹는다. 샴페인의 향은 매우 미세하므로 음식의 맛이 너무 강하지 않도록 신경쓴다.

● 중(中): 칵테일과 간식거리

80년대의 주말 단막극에서 사랑하는 남녀가 스탠드바에서 마시곤 하던 파랗고 빨간 음료들은 올바른 칵테일의 모양새가 결코 아니다. 칵테일은 이렇게 저렇게 조합하는 다양한 술과 기타 재료, 바텐더의 기교나 노하우에 따라 수많은 맛이 만들어지는 일종의 예술이다. 칵테일의 또 다른 장점은 마시는 사람의 주량이나 예산에 맞추어 맞춤조제가 가능하다는 실용성이다.

낮에 마시기 좋은 ‘미모사’란 칵테일은 스파클링 와인에 오렌지주스를 섞은 상큼한 맛이 피로를 푼다. 맥주와 토마토 주스를 같은 양으로 섞는 ‘레드아이’는 숙취해소에 좋고, 뜨거운 커피에 각설탕과 브랜디를 섞는 ‘카페로열’은 겨울철 추위에 언 몸을 녹인다.

‘레드아이’에는 푹 익힌 감자를 모차렐라 치즈와 빚은 후 빵가루에 묻혀 튀겨내는 ‘퓨전 고로케’가 어울린다. 게맛살을 쪽쪽 찢어서 마요네즈와 겨자에 버무려 속을 채운 크루아상 샌드위치는 ‘미모사’의 신맛과 잘 맞는 간식이며, 프랑스식 밀쌈인 ‘크레페’를 얇게 부쳐 그 위에 바나나 슬라이스와 캐러멜시럽을 올리면 ‘카페로열’과 어울린다. 주의할 점은 새콤달콤한 맛 뒤에 숨겨진 칵테일의 알콜 도수. 방심했다가 취한다.

박재은

● 강(强):소주 1병과 계란

이 단계에서는 다시 일터로 돌아갈 생각을 접어야 할 듯싶다. 비오는 날이나 반대로 유난히 해가 좋은 날, 그리움에 빠져 있는 날 효과를 본다. 하지만 울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침체되어 있는 날에는 활력소는 커녕 구질구질한 넋두리로 빠져버릴 수 있으니 피해야 한다. 마음 맞는 이와 나누는 오후 3시의 낮술은 특별한 흥분을 준다. 기분좋게 긴장이 풀려가면서 주점 밖으로 지나가는 바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여유로운 도인이 된 기분이 들 정도다. 주종이 토속주로 바뀌면 그 멋은 한층 더해지니, 일단 도자기 호리병에 담겨나오는 그 자태가 앞서 열거한 그 어떤 술보다 운치 있다.

어울리는 안주를 보자. 개인적으로는 소주에 달걀안주를 선호하므로 주로 계란탕이나 계란말이를 먹지만, 게살과 부추를 달걀물에 훌훌하게 익혀먹어도 별미안주다. 토속주에는 달달한 콩자반이나 나물류같은 밑반찬들이 입에 붙는데, 특히 쌀맛이 강한 곡주에 안성맞춤이다. 채 썬 호박에 찹쌀가루로 반죽을 풀어 부꾸미인 양 지지고, 다진 오징어와 새우로 속을 넣어 봉하면 황송한 맛의 안주가 된다.

오늘 소개한 메뉴들은 굳이 술상이 아니더라도 아직 길고긴 겨울밤이나 출출한 주말 오후에 간식거리로 만들어 보아도 좋겠다.

● 연어무스

훈제연어 200g, 생크림 50g,

사우어크림 1/2큰술, 딜, 소금, 후추

1. 연어는 생크림을 부어가며

블렌더에 간다.

2. 1에 다진 딜과 사우어크림을

섞는다.

3. 2를 소금, 후추로 간한다.

● 퓨전고로케

감자 2개, 모차렐라 치즈100g,

파마산치즈, 빵가루 1컵반, 식용유,

소금, 후추

1. 감자는 푹 삶아서 으깬 후

파마산치즈와 후추로 간한다.

2. 1을 체쳐서 시중에 파는 모차렐라

치즈를 섞어서 동그랗게 빚는다.

3. 2를 빵가루 위에 굴린 뒤

식용유에 튀겨 낸다.

● 해물부꾸미

애호박 1개, 밀가루 2/3컵, 찹쌀가루 1/2컵, 물 1컵, 사이다 1/3컵, 소금, 후추, 오징어 60g, 새우 40g, 양파 50g

1. 애호박은 곱게 채친다.

2. 새우, 오징어, 다진 양파는 섞어서 소금, 후추로 간한다

3. 1에 밀가루, 찹쌀가루, 물, 사이다를 넣어 걸쭉하게 반죽을 만들고 소금, 후추로 간하여 얇게 부친다.

4. 약한 불에 3을 부친다. 겉면이 익으면 반죽을 한 스푼 더 떠서 아직 다 익지 않은 가운데 부분에 올리고 만두처럼 반으로 접어서 마저 익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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