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떠났던 선조들⑧]영욕의 「힐로 숯가마」

입력 1998-03-03 20:15수정 2009-09-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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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제도 남단 빅아일랜드섬의 관문 힐로공항. 공항을 뒤로 한 채 해발 4천1백m의 마우나 케아산록을 향해 11번 하이웨이를 20분 남짓 달렸을까. 마운틴뷰를 알리는 이정표가 시야에 나타난다.

고속도로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려 들어서면 넓은 숲속에 아담한 민가가 전원의 풍취를 물씬 풍기며 줄지어 있었다. 능선을 따라 산길로 접어들어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 기차 1량(輛)크기의 숯가마터가 무성히 자란 수풀더미에 묻혀 있었다.

일제시대 하와이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던 고 이승만(李承晩)박사는 그를 따르던 3백여명의 동지회 회원들과 주변에 무궁무진한 오히아나무를 사용해 이 숯가마에서 숯을 만들어 힐로시까지 가져다 판 돈으로 독립자금을 만들었다.

숯가마는 2개의 아궁이에 전체 길이가 15m 규모. 땅바닥에 닿아 있는 가마안 레일과 철제 레일받침 연통 등은 아직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숯가마 내부 곳곳은 영욕(榮辱)의 과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수십년간 흘러내린 빗물탓인지 과거의 튼튼함은 사라지고 발길이 닿을 때마다 철제 빔은 삭아서 부서져내렸다.

가마에는 연통이 3개 있었는데 가운데 것은 직경 40㎝, 양쪽은 80㎝ 정도. 이 규모면 당시에는 제법 컸을 것이라는 게 현지 주민들의 얘기다.

1925년 3월 당시 임시정부 대통령이었던 이박사는 상하이의정원에서 탄핵을 받아 대통령직에서 면직됐다. 당시 50세로 정력적인 활동을 펼 나이였던 이박사는 하와이에서 이같은 소식을 접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중 그를 따르던 동지회 회원들과 함께 동지식산회사를 차려 동지촌건설을 주도한다.

이 구상에 따라 동지회는 1927년 당시 오지였던 하와이섬 마우나케아산록에 9천9백에이커의 산을 사들인 뒤 숯제조사업을 벌인다. 그러나 당시 잦은 비로 인해 일의 능률이 떨어져 사업에 실패했다고 당시 한인들은 전했다. 결국 이박사는 1929년 들어 식산회사 사업을 포기하게 되고 독립에의 염원이 담긴 동지촌건립의 꿈도 깨져 이 일대 부지는 일본계 미국인인 다로 오시로에게 넘어간다.

그 이후 숯가마의 역사적 의미는 망각의 저편에 묻혀져버린다. 이 일대는 70년 하와이동포 민금순씨가 매입했을 때 잠시 그 실체가 알려진 뒤 이젠 미국인에게 넘어간 상태다.

쓰라린 과거의 영화를 간직한 숯가마터는 그 이후 쓸쓸한 여생을 맞고 있다. 특히 숯가마의 밑부분 문짝중 하나는 땅주인이었던 백인의 손에 넘어가 있다. 이 백인은 이곳이 한인들에게 중요한 역사적인 곳이어서 값어치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 문짝을 훔쳐간후 기름칠을 해서 보관하고 있다는 것.

힐로교민회장인 이병용씨(45)는 “최근 일본계 미국인으로부터 이곳이 한인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유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문짝마저 뺏긴 채 버려진 역사적 유적을 누군가는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힐로(하와이)〓정연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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