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떠났던 선조들]조선족 최대마을 만룽촌

입력 1998-01-20 20:12수정 2009-09-25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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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배우고 부지런히 일하며 떳떳하게 살아갑시다.’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에서 남쪽으로 20㎞ 떨어진 첸진(前進)향 만룽(滿融)촌. 마을 입구에 커다란 글씨로 적힌 구호가 주민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만룽촌은 중국의 랴오닝 헤이룽장(黑龍江) 지린(吉林)성 등 동북3성에서 가장 규모가 큰 조선족 마을. 1천1백가구 3천4백명의 주민이 모두 조선족이다. 만룽촌은 중국의 여느 농촌 마을들과는 모습이 다르다. 벼농사를 주로 하는 주민의 대부분이 부농에 속하는데다 마을에는 유리공장 파이프공장 종이공장 등이 31개나 가동되고 있다. 중국정부가 83년 개인사업을 허가하자 촌정부가 마을의 우수한 노동력을 기반으로 유치한 공장들이다. 최근에는 또다른 변화가 일고 있다. 촌정부가 95년부터 짓기 시작한 7개동 3백92가구 규모의 아파트 공사가 올해 안에 마무리된다. 선양에 나가 사는 한인들이 자녀들에게 이 마을에서 민족교육을 시키기 위해 이들 아파트에 입주신청을 하는 등 인기가 높다. 여기에 2층 규모로 건설중인 병원도 올해 문을 연다. 마을 노인들의 여가활동을 위해 마을에서 스스로 마련한 1백평 규모의 활동실도 이곳만의 자랑거리. 만룽촌에 한인들이 살게 된 것은 1934년 평안도 출신인 정씨 등 네 집안이 흘러 들어와 만저우(滿洲)인 소유의 황무지에 수로를 내고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그후 이곳 땅은 토층이 두껍고 물을 많이 머금어 논농사에 안성맞춤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인들이 모여들어 45년 해방 때는 주민이 4백호에 달했다. 그리고 일제의 패망 직후 중국 사회가 혼란한 상황에서 이곳은 살기 좋다는 소문에 한인들이 인근 성 등 각지에서 모여드는 바람에 인구가 더욱 늘어났다. 마을이 선양 교외에 있고 다른 곳보다 일찍 주택개량이 이루어져 70년대에는 사회주의 농촌의 모델 격이라고 해서 독일 미국 등 선진국에서까지 이 마을을 연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다. 촌장 신태식(申太植·42)씨는 “동포들이 한데 모여 살면서 중국 사회에서 자긍심을 갖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자는 것이 주민들의 가장 큰 바람이며 모든 주민이 그러한 각오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했다. 〈선양〓김정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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