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3월 23일 18시 36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당시의 상투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틀어맨 머리카락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갖고 있던 인식의 한계를 대변하는 것이다. 변화를 모르고, 변화를 거부하고, 그리고 변화를 피해가려고 몸부림쳤던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슴아픈 점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이 아닌 일본인들에 의해서 상투를 절단 당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상투를 자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상투, 말하자면 변화의 시점을 놓쳤던 인식의 상투를 잘리우고 있다. 이번에도 우리 스스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IMF(국제통화기금) 등의 손을 빌려서이다. 100년전 우리 조상들이 잘려나가는 상투를 보면서 울분을 터뜨리고 통곡하며 심지어 목숨을 끊기까지 했듯이 이번의 상투사건에서도 우리는 울분과 자결의 쓴 경험을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 지난 100년동안 우리의 인식이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을 나타내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다.
앞으로 10년을 생각해 보자. 세상은 광속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식의 상투를 잘라내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귀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지금이라도 먼저 깨달은 사람이, 먼저 앞서가는 사람이 우리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여기에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국제사회의 요구요, 둘째는 투자자들, 그리고 셋째는 경영상의 필요이며, 넷째는 정부나 사회단체의 요구이다.
돈을 꿔주고 투자한 사람들이나 그 돈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은 물론 그 과정을 감시하는 집단까지 모두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 변화를 주도해나갈 것인가이다.
세계인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경영방식, 또는 패러다임을 글로벌스탠더드라고 한다. 글로벌스탠더드는 지금의 우리 상황에서는 미국의 스탠더드라고 할 수 있다. 돈을 꿔주는 사람의 스탠더드를 의미한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달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미국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정직성과 성과창출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은 이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투명성과 정직성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스탠더드가 결코 최종목표일 수는 없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조건일 따름이다.
글로벌스탠더드를 갖추었다고 해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3의 상투' 를 트는 것과 같다. 우리의 최종목표는 세계적 경쟁력(Global Competence)이어야 한다. 세계적 경쟁력이란 글로벌스탠더드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남이 모방할 수 없는 경쟁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글로벌스탠더드를 갖추면서 동시에 독자적인 경쟁역량을 확보한 기업만이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다.
허태학(삼성에버랜드 대표이사 사장)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