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박성희/정쟁보도보다 후보 심층분석을

  • 입력 2002년 10월 25일 18시 14분


북한이 ‘북남상급회담’이라고 부르는 ‘남북장관급회담’이 원론적 합의 수준에 머문 채 막을 내렸다. 같은 언어를 쓰는 데도 남과 북은 공동회담의 명칭조차 제각각이다. 그 회담에서 북은 “우리 민족끼리 합심해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전해진다(23일).

핵이라는 가공할 무기에 모골이 송연한데, 북한은 봄눈 같은 화사한 수식어와 버티기 전략으로 팽팽한 긴장을 희석시킨다. 만경봉호에 가득 타고 온 북한의 미녀들, 그리고 거액의 행방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가 가뜩이나 흐려져 가는 판단을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 대체 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혼란의 와중에 돋보인 기사들이 있었다. ‘북한은 우리에게 뭔가’라는 제목의 10월 16일자 사회면 부산발 기사는 ‘넘실대는 인공기와 브레이크 없는 북한 신드롬’ 속에서 치러진 아시아경기를 지켜본 부산 시민들이 겪은 심리적 혼란을 잘 짚어냈다.

전날 낮 시간에 생방송으로 만경봉호의 귀환을 보도한 공영방송들이 시종일관 ‘아쉬운 작별’ 유의 감상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 것과는 차별화되는 기사였다.

18일자 WEEKEND 섹션의 ‘남녀북녀(南女北女)’는 북한 응원단의 여성스러움에 대해 남성 편향적 담론만 늘어놓던 여러 언론 보도 틈에서 평범한 북한 여성의 실상을 조명하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균형 잡힌 정보와 읽는 재미를 함께 주었다.

사설 역시 줄곧 우리 정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북한 핵 문제를 매우 중요한 의제로 부각시켰다. ‘정부의 북핵 대응에 분노한다’(24일) ‘북한, 핵 포기가 먼저다’(23일) ‘북핵 첩보 숨기고 지원했다니’(22일) ‘북핵, 한미 시각차 심각하다’(21일) 등으로 연일 계속된 사설은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켰다.

‘사설 쓰는 법’이라는 미국의 한 저널리즘 실무서는 논설위원의 자질을 크게 ‘호기심’과 ‘의심’으로 꼽는다. 논설의 기능은 이슈의 해설과 설득 설명에 있다고 했다. 호기심은 낯선 것에 대한 지적 유연함을 요구한다. 또 해설에는 지식과 통찰이, 설득에는 논리가 필요하다. 그 중에서 한국 언론이 가장 귀담아들을부분은 아마도 논리일 것이다. 사안이 심각할수록, 정부가 못 미더울수록, 언론은 더 냉정하고 정돈된 논지를 펴야 한다.

대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합집산 논란만 반복하는 정계 개편과 정쟁 소식에 묻혀 미래의 지도자에 대한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을 이끌 적절한 뉴스나 분석이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동아경제 섹션의 ‘머니’라는 한글 간판이 계속 눈에 거슬린다. 왜 영어를 한글화했는지도 궁금하고, 내용상 ‘금융플라자’와 어떻게 구별되는지도 궁금하다. ‘KIDS’ 섹션(23일)의 ‘유럽 장난감 비싼 만큼 제값’ 기사나 ‘오토 월드’ 섹션(24일)의 각종 외제차 관련 뉴스는 상품 정보를 전달하는데 주력하다 보니 외제 소비풍조를 조장하는 기사라는 느낌을 주었다. 제목도, 내용도 좀 더 우리 것이었으면 좋겠다.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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