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몽준]일본은 좋은 이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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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최근 일본 외무성에서 만든 동영상이 한국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포스코 제철소, 소양강 댐, 지하철 1호선 등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한강의 기적’이 일본의 지원 덕분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일제가 조선을 수탈했다거나 6·25전쟁 특수로 일본 대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는 점을 들어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 6·25전쟁으로 얻은 것은 개별 기업의 이익 차원을 넘는 것이었다. 6·25의 발발은 국제정세의 큰 흐름을 바꿔 놓았고 일본은 최대의 수혜자였다.

일본은 6·25의 원인이 된 한반도 분단에도 책임이 있다. 1941년 4월 일본은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그해 12월 진주만 습격 전에 소련에 미리 손을 쓴 것이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일본 본토에서 상륙작전을 벌일 경우 많게는 300만 명의 미군 희생을 예상하고 소련에 일본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할 것을 요청했다.

미국으로부터 ‘무조건 항복’ 압박을 받고 있던 일본은 소련에 미국과의 중재를 간청한다. 일본이 시간을 끌고 있던 중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고 이틀 후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10일 한반도에 진주한다. 일본이 일주일만 일찍 항복했어도 소련의 개입은 없었을 것이고 한반도의 분단도 없었을 것이다.

일왕의 항복 선언 후 맥아더가 대표하는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일본의 모든 산업을 해체해 전후 일본을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 낙농국가(permanent neutral pastoral country)’로 만들려고 했다. 태평양전쟁은 일본의 군벌과 재벌이 결탁해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일본을 다시는 전쟁할 수 없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군벌을 숙청하고 재벌을 해체하는 것이 중요했다.

맥아더 사령관은 많은 우파 정치인들을 체포했고 이 중에는 아베 신조 현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도 포함돼 있었다. 국제군사재판을 열어 A급 전범 7명을 교수형에, 16명을 종신형에 처했다. 일본 경제 전반의 해체작업도 진행됐다. 40여 개 재벌의 해체가 결정되고 실제로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야스다 닛산 등 재벌의 해체가 진행됐다.

그러나 1949년 10월 중국이 공산화되고 바로 그 다음 해 여름 6·25가 터지면서 미국의 일본 정책은 180도 바뀐다.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상대로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미국이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적을 발견하면서 일본을 공산주의에 맞서는 아시아의 보루로 재건하기로 방향을 바꾼다. 재벌 해체 정책은 흐지부지됐다. 우익 정치인들을 대거 석방하기 시작했고 이때 기시도 석방됐다. 미국의 숙적 일본이 하루아침에 미국의 동맹 파트너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일본을 영세중립 낙농국가로 만들려던 미국의 정책이 바뀌지 않았다면 오늘의 일본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일본 하면 연상되는 단어는 임진왜란, 수십만 조선인의 코무덤과 귀무덤, 명성황후 시해, 안중근 의사, 위안부, 징용, 징병 등이다.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지난 반세기만 보더라도 일본이 원조를 주어서 한국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균형된 시각이 아니고 이웃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으면서도 중국의 공산화와 6·25 덕분에 기사회생한 일본이 요즘 미국을 등에 업고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평화를 위해 일본의 경제를 부흥시켰다고 하지만 많은 아시아 사람들은 일본에 묻고 싶을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없었다면 아시아 대륙이 훨씬 더 평화롭고 번영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일본을 좋은 이웃으로 사귀고 싶어도 일본은 자꾸 아픈 상처를 건드린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일본 외무성#한강의 기적#일본의 지원#6·25전쟁#기시 노부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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