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공동체 살리기]<5>애향운동 성공모델 '울산사랑'

  • 입력 2003년 5월 21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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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울산사랑운동위원회 소속 시민들이 울산 울주군 서생면 간절곶을 방문해 환한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울산=최재호기자
지난달 29일 울산사랑운동위원회 소속 시민들이 울산 울주군 서생면 간절곶을 방문해 환한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울산=최재호기자
“공장이 울산에 있고 종업원이 대부분 울산에 산다면 당연히 울산기업 아닙니까.”

다국적기업인 듀폰의 울산공장 박창두(朴昌斗·46) 공장장은 스스로를 ‘울산기업인’이라고 소개하고 다닌다. 이달 중순 울산지역 환경보호단체인 ‘울산생명의 숲’ 사무실에서 환경보호 기금 1000만원을 전달할 때도 그는 양명학(梁明學·61·울산대 교수) 이사장에게 이 지론을 다시 강조했다.

듀폰은 미국 델러웨이주 웰밍턴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화학회사. 이날 낸 기금은 회사 규모에 비해서는 ‘작은 것’이지만 그동안 울산 주민들이 펼쳐온 ‘울산사랑운동’이 거둔 ‘큰 결실’이었다.

▼연재물 목록▼

- <4>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 <3>전남 강진군 옴천면
- <2>충남 강경의 '지역살리기 교과서'
- <1>교육기금 모으는 경북 군위 주민들

듀폰은 울산공장에 이어 한때 인근 울주군 온산공단에 이산화티타늄 제조공장을 세우려 했다가 ‘공해업체’라는 주민들의 선입견에 밀려 포기한 적도 있다. 울산지역 환경단체와는 ‘악연’이 깊은 셈.

하지만 울산공장측은 “울산사랑운동에 외국계 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며 적극 참여를 시작했고 이는 다른 외국 기업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됐다. 양 이사장은 “국내 기업들도 외면하기 쉬운 지역 환경보호운동에 외국계 기업이 동참한 것은 뜻 깊은 일”이라고 했다.

‘팔도사람’뿐만 아니라 외국계 기업이 가장 많이 몰려 있다는 ‘이방인의 도시’ 울산에서 애향운동이 불붙고 있다.

5, 6년 전만 해도 울산은 한국 경제성장을 주도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내외의 평가는 ‘노사분규와 공해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래 머물고 싶은 정주(定住)의식과 정체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총체적인 부실도시’ 울산의 모습을 바꿔보자는 시민 공감대는 1997년 7월 울산광역시 승격을 계기로 싹텄고 2001년 10월 ‘울산사랑운동’의 형태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월드컵축구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이 운동은 탄탄하게 뿌리를 내렸으며 현재는 애향운동의 새로운 모델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울산사랑추진위(위원장 김복만·金福萬 울산대 교수)가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관광명소와 대기업뿐 아니라 하수처리장, 정수장 등 울산의 ‘치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시티투어다. 자부심은 물론 울산을 왜 아껴야 하는지 ‘사명감’을 심어주려는 뜻. 지금까지 시민 2만2000명이 투어에 참여했으며 올해 안으로 1만5000명을 더 초청할 계획이다.

지난달 말 투어에 참가했던 박노영(朴魯榮·67·울산 남구 달동)씨는 “충북 괴산에서 1983년 직장을 따라 울산으로 이사왔지만 울산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며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대기업을 보고 자부심을 느꼈다”고 했다. 지난해 대구에서 이사 온 김은희(金恩姬·43·울산 남구 무거동)씨도 “시티투어에 참가하고 난 뒤 비로소 울산사람이 된 느낌이다. 도시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1960년대 초반 정부가 울산공단을 만들면서 전국의 산업인력이 몰려들었고 이 때문에 울산은 이방인의 도시가 되었다. 4월 말 현재도 인구 106만명 가운데 80% 이상이 객지에서 태어나 울산으로 이사를 왔거나 부모가 울산에서 태어나지 않은 ‘객지사람’이다. 당연히 ‘돈을 벌거나 퇴직하면 울산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그러나 시민 주도의 울산사랑운동이 확산되면서 분위기는 급속하게 바뀌었다. 올해 이 운동은 시민의식과 교육 문화부문 등 5개 부문뿐 아니라 울산마스코트 달기 운동, 시도 향우회 체육대회, 울산시가(市歌)경연대회, 울산사랑 사생대회, 어려운 가정 무료검진, 울산사랑 시민달리기대회 등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울산시가 지난해 ‘울산 12경’을 선정한 것도 울산사랑운동의 결실이었다.

울산발전연구원 고영삼(高永三·42) 도시사회연구실장은 ‘울산을 살고 싶은 고장’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울산의 역사성과 성장 과정 등을 가르칠 ‘울산학’과 ‘울산사랑시민학교’를 설립하고 시립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소프트 울산’을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소프트 울산 만들기’와 함께 ‘경부고속철도 울산역 유치’(추진위원장 김철욱·金哲旭 울산시의회 의장)와 ‘울산 국립대 유치’(상임의장 박일송·朴一松 춘해대 교수)를 위한 시민운동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하드웨어’ 측면의 사랑운동도 병행되고 있는 셈이다. 중추산업도시에 고속철역이 없다는 것, 광역시에 4년제 대학이 하나뿐이라는 점은 시민들이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의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울산사랑운동이 펼쳐지면서 시민들의 마음도 바뀌었다. 이 지역 경상일보가 이달 초 시민 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평생 울산에 살겠다’는 응답이 57.1%로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떠날 것’(18.4%)과 ‘경제생활을 하는 동안만 울산에 살 계획’(14.3%) 보다 많았다.

회원과 회원 가족이 23만명인 재울 호남향우회 김정영(金政永·59) 회장은 “울산이 급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은 토착민과 객지사람이 합심했기 때문”이라며 “고향사람, 타향사람이 단합하고 애향심을 가질 때 울산은 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로부터 울산으로 발령나는 사람은 두 번 울었습니다. 처음에는 무뚝뚝한 울산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막막해서이고 떠날 때 울산사람들이 베풀어준 정과 의리를 못 잊어 또 운다고 합니다. 울산사람들은 외지인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습니다.”(울산사랑추진위 김복만 위원장)

울산=정재락기자 raks@donga.com

▼울산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SK 등 대기업이 밀집한 울산은 1인당 생산액이 전국 1위인 대표적인 산업도시다. 총면적은 1056.4㎢로 서울의 1.7배나 되며 인구는 4월말 현재 106만명.

서쪽으로는 해발 1000m 이상인 산 8개가 모여 있고 스위스의 알프스처럼 경치가 빼어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영남알프스'가 있다. 영남알프스에서 발원된 태화강은 울산시가지를 서에서 동으로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든다. 산과 강과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도시인 셈.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태화강변 있다 임진왜란때 소실된 '태화루'는 영남의 3대 누각으로 불렸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처음으로 울산이란 지명이 등장했으며 1962년 2월 '울산특정공업지구'가 지정돼 울산공단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1899년 러시아가 태평양 연안에서 잡은 고래를 해체하는 곳으로 울산 장생포를 선정하면서 우리나라 고래잡이 전진기지가 됐으며 고래고기 식당 40여개가 지금도 성업중이다.

1962년 6월 울산읍과 방어진읍이 통합돼 울산시가 되었고, 1995년 1월 인근 울주군을 통합한 뒤 1997년 7월15일 4구(區) 1군(郡)의 광역시로 승격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이 삼동면 출신이며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은 웅촌면 출신. 정치근 안우만 전 법무부장관이 반구동과 옥교동,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삼남면에서 태어났다. 가수 윤수일과 개그맨 김영철씨도 울산태생이다.

▼'울산사람' 초대사무국장 김성득교수▼

“울산이 더 이상 ‘떠나고 싶은 도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울산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영원히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야 합니다.”

울산대 토목·환경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8월 미국 뉴욕의 포리테크닉대 방문교수로 뉴욕에 체류중인 김성득(金聲得·53) 교수는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울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울산사랑운동’의 추진방향을 한마디로 제시한 것이다.

가지산(1240m) 자락인 울산 울주군 상북면이 고향인 김 교수는 울산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태화강 보호를 위해 1988년 태화강보전회를 창립해 초대 사무국장을 맡으며 일찍부터 ‘울산사랑운동’을 이끌어왔다.

“울산에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과 회사의 이익만 생각하는 시민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들이 진정 울산을 사랑하는 ‘시민’이 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김 교수는 “이민이나 업무, 관광 목적으로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뉴욕에도 ‘I♥NY’운동을 통해 뉴요커들의 구심점을 찾고 있다”며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든 울산도 뉴욕처럼 울산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7년 전부터 경부고속철도 울산역 유치운동을 벌여 왔다. 당시 김 교수가 전공(철도교통)을 살려 고속철도 울산역 유치의 당위성을 담아 발표한 논문은 지금도 울산역 유치운동의 ‘경전’처럼 통하고 있다.

김 교수는 “경부고속철도 울산역 유치 여부에 울산이 재도약을 하느냐, 아니면 부산과 대구의 변방도시로 전락하느냐가 달려 있다”며 “고속철도 울산역 유치운동도 울산사랑운동의 일환으로 활발히 전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다음달 울산대로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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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정재락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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