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⑪/성남 「여럿이학교」]「속삭임 공책」

  • 입력 1998년 3월 23일 09시 04분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다 보면 갈등이 자주 일어난다. 사소한 일로 친구들과 다투는 일도 많다. 선생님이 조금만 관심을 게을리해도 쉽게 토라지곤 한다.

어린 아이들이라 싸우고 난 뒤에 금방 화해하지만 의외로 오래 가는 수도 있다. 친구나 선생님에게 잘못을 사과하고 싶어도 수줍어 말을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교사들은 아이들이 직접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은 글로 적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교사들은 학생 한 명에 한 권씩 ‘속삭임 공책’을 마련해 이름을 써서 복도 한쪽에 걸어 두고 하고 싶은 말을 적도록 했다. 교사들 이름의 공책도 함께 걸어놓고 수시로 내용을 확인하고 답장을 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끔씩 속삭임 공책에 친구를 험담하는 글을 써놓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아름다운 속마음을 털어놓는 바람에 서로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다음은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주고 받은 속삭임 공책 편지 내용.

“강산아! 너는 밤하늘에 있는 별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니. 나는 돌아가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친할아버지가 생각나. 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보지 못했지만 어떻게 생기셨는지 보고 싶어. 그럼 안녕. 호철이가.”

“호철이에게.

호철아! 내가 오늘 너무 심한 말을 한 것 같아. 마음 풀고 같이 ‘붉은매’ 만화보면서 과자 먹자.

호철아! 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할머니는 안돌아가셨거든. 할아버지는 아빠가 세살 때 돌아가셔서 나는 얼굴도 몰라. 나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할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슬퍼져. 너는 할머니 빼고 다 돌아가셔서 나보다 훨씬 슬플 거야. 나도 너의 말을 들으니까 눈물이 나오려고 해. 나도 너의 마음 알아. 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것. 내가 너라면 너무 슬플 거야. 안녕. 강산이가.”

<홍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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