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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3월 16일 0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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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시 오정동 부천실업고등학교. 부천지역 근로청소년들이 야간에 공부하며 ‘살아있는 교육’을 받고 있는 작은 학교다. 상근교사 10명에 전교생이 90여명뿐. 이중 여학생은 30명 가량.
“솔직히 우리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낮은 편입니다. 영어 수학은 잘하면서 못질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은 우리 학교에 어울리지도 않지요. 평범하지만 자신과 이웃의 삶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을 길러내자는 것이 우리의 교육목표입니다.”
이 학교의 수업내용은 일상적인 삶과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교분위기가 반영돼 있다. ‘직업의 세계’ ‘의식주수업’ ‘동아리수업’ 같은 일반 고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교과목들도 많다.
12일에는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동아리수업이 진행됐다. 풍물패 연극반 컴퓨터반 미술반 기타반 등 10여가지나 되는 동아리수업은 학생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 매월 넷째주 토요일은 아예 4시간 내내 동아리수업만 한다.
새학기 첫 시간인 이날 수업은 새로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동아리를 소개하는 시간. 신입생들이 각 동아리 수업현장을 견학하며 마음에 드는 동아리를 스스로 선택한다.
다른 학교에 다니다 이 학교 2학년에 편입한 김혜숙양(18)은 “동아리마다 분위기가 좋고 선배들도 모두 친절하지만 평소 노래를 좋아해 노래반에 들어갈 생각”이라며 즐거워했다.
부천실업고는 89년 11월 사회교육법에 따라 3년제 야간 사회교육시설학교로 등록하고 이듬해 3월 문을 열었다. 그동안 고강동 주택가 건물을 빌려 수업을 해오다 96년 11월에야 오정동 공장지대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동안 배출한 졸업생은 80여명. 공인된 고교 졸업장은 없지만 모두 건실한 ‘산업근로자’로 생활하고 있다. 졸업생들은 대부분 학교의 후원자가 됐다. 가까운 지역에 자리잡은 일부 졸업생들은 후배들을 위해 무보수 보조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교사(校舍)를 새로 지을 때는 4회 졸업생인 전인섭씨(25) 등 졸업생 3명이 6개월동안 일당도 받지 않고 자원봉사를 했을 정도로 졸업생들의 학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1회 졸업생인 한윤영씨(25)는 탁구동아리의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학교생활을 통해 사람은 누구나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선생님들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후배들의 수업을 도와주는 겁니다.”
올해 입학한 신입생부터는 고졸 학력을 인정받게 돼 학교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지만 또 다른 시련이 닥쳐왔다.
학교설립 이후 늘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려 왔지만 올해에는 사정이 더 어려워졌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 때문이다. 3백여명의 후원자들이 매달 보내오는 후원금도 크게 줄어든데다 교사를 지을 때 빌린돈의 이자도 그만큼 늘어났다.
“학교설립 초기에 교사들이 손수레에 야채를 싣고 학교살림을 꾸려가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위기를 넘기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믿고 모두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천실업고 연락처 032―674―7823
〈부천〓홍성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