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성의 오늘과 내일]닭에게 미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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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성 경제부장
황재성 경제부장
 국민 간식의 반열에 오른 닭튀김(프라이드치킨)은 올해 K푸드의 대표 상품으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올여름에 서울과 인천, 대구 등지에서 대규모 중국인 관광객이 방문해 맥주와 함께 닭튀김을 먹는 ‘치맥파티’를 즐겼을 정도다. 하지만 중국인의 한국 닭 사랑은 예전부터 있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고의서 등에서 약용으로 한국 닭을 추천한 곳이 여럿이다. 특히 명나라 때 약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선 “닭은 그 종류가 많아 산지에 따라 크기와 형태 색깔에 차이가 있지만, 조선의 닭이 맛이 가장 좋고 기름지다”고 기록했다.

 한반도에서 닭이 사육되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중국 문헌인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에 한국에 꼬리가 긴 세미계(細尾鷄)가 있다는 기록으로 미뤄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육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오랫동안 닭은 우리 민족과 같이하며 영양을 책임져줬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닭은 한민족의 삶과 밀접한 관계다. 닭은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10번째 동물로 전통 신앙 속에서 다양하게 응용됐다. 특히 무속 신앙에서 닭은 인간의 좋지 못한 운수나 운명을 대신해 죽음으로써 인간을 원 상태로 복귀하게 하거나 회생케 하는 역할을 맡는다(한국민속신앙사전: 마을신앙 편·2009년·국립민속박물관).

 요즘 닭이 큰 시련을 겪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이다. 올해 AI는 예년과 달리 독성도 강할뿐더러 두 종류의 바이러스가 동시에 발생하는 등 예년에 보기 힘든 양상을 띠고 있다. 그만큼 피해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발생해 한 달여 만인 19일까지 무려 2000만 마리가 도살처분됐거나 그럴 처지에 놓였다. 이전까지 역대 최대 피해(1396만 마리)였던 2014∼2015년 AI는 195일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로 인해 농가와 정부, 음식업체 등이 치러야 할 직간접 손실만 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이 같은 피해의 90%가량은 닭에게서 발생했다.

 문제는 AI가 당분간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도 안 했다는 게 무엇보다 우려스럽다. AI는 기온이 4도 이하(섭씨 기준)일 때 생존율이 높아진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겨울(2016년 12월∼2017년 2월) 기온은 예년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12월의 평균 온도는 1.5도이고, 1월은 영하 1도, 2월은 1.1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올해 겨울은 예년보다 건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기로 전염되는 AI 바이러스는 건조할수록 확산이 잘된다.

 컨트롤타워로서 기능을 해야 할 정부는 늑장 대응과 엇박자 대책으로 갈팡질팡하면서 문제만 키웠다. 이번 AI 발생 초기 전문가들은 독성이 강하고 전파력이 이전보다 빠른 만큼 대책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듣지 않았다. 여기에 인간의 탐욕은 AI가 맹위를 떨칠 근본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이번 AI의 주 타깃이 되고 있는 산란계(알 낳는 닭)는 철사로 만든 닭장에 넣어져 키워진다. 이 닭장의 바닥면적이 A4 용지보다도 작다. 일부 농장에서는 이런 닭장을 최대한 쌓아두고 70만 마리까지 키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번 바이러스가 퍼지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이번 AI 대란은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내년은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다. 닭의 해에 수천만 마리의 닭을 질식사시켜 흙구덩이에 파묻거나 섬유강화플라스틱(FRP) 통에 보관해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닭에게 정말로 미안하다.

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닭#조류인플루엔자#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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